[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90] 3부 오름-(49)샘을 '설'이라 했던 사람들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90] 3부 오름-(49)샘을 '설'이라 했던 사람들
설오름 지명에 얽힌 설설설, ‘호미’도 ‘설덕’도 아니다
  • 입력 : 2024. 07.16(화) 01: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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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샘과 물웅덩이가 곳곳에 있어 사람 살기 좋은 오름

[한라일보] 표선면 가시리 산1번지. 표고 238m, 자체높이 98m다. 가시라 마을 북쪽에 있는 오름이다. 이 오름은 자체높이가 낮고, 저경이나 둘레 모두 작은 오름에 속한다. 오름 나그네 김종철의 표현처럼 등성마루는 텐트의 용마루처럼 평평하고 양 끝이 봉긋하게 솟아올랐다. 남쪽 봉우리는 직경이 1m를 훌쩍 넘을 만큼 큰 바윗덩이들이 쌓여 있다. 북쪽 봉우리는 바위 지형은 보이지 않고 잔디, 띠, 억새 등으로 되어있다.

샛도리물, 삼양1동의 옛 지명 '설개'는 이 샘 이름에서 기원했다. 오름해설사 김미경

형태도 이 오름의 특징이긴 하다. 그러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뭐니 뭐니해도 물이 있다는 점이다. 오름의 동측 자락에는 큰 웅덩이들이 형성되어 있어서 많은 양의 물이 고인다. 주위는 질퍽거릴 정도로 젖어 있다. 분화구는 서측에 있는데, 가시리 2566번지에 해당한다. 이곳에는 늘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다.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 주민들은 이 물을 이용하였다. 포제를 봉행할 때는 이 물만을 사용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이 샘이 있어 가시마을이 들어섰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살기 좋은 곳이다.

설오름이란 지명은 지형 지세가 마치 호미와 닮았다면서 처음에는 호미를 가리키는 한자어 서(鋤)자를 취하여 서오름이라 하던 것이 변형되어 설오름이라 한다는 책이 있다. 17세기 말부터 이 오름의 이름이 나타난다. 소흘악(所仡岳), 소흘악(所訖岳), 서월악(西月岳)으로 표기하였다. 고전 표기나 지역에서 채록된 이름들을 모으면 서악(鋤岳), 서악(鋤岳), 서월악(西月岳), 서월악(西月岳), 서을악(鋤乙岳), 서을악(西乙岳), 서을악(鋤乙岳), 설악(雪岳), 소을악(巢乙岳), 소흘악(所訖岳), 소흘악(所仡岳), 소흘악(所屹岳), 우소악(牛小岳) 등 13개다.

설오름 동측 자락에 있는 물웅덩이, 이곳에는 연중 이런 웅덩이들을 볼 수 있다. 김찬수

퉁구스어 중 만주어 혹은 나나이어를 쓰던 사람들, 샘을 '설'이라 불러

이 이름들을 보면 '설-', '서을-', '서월-', '소을-', '소흘-' 등으로 발음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 발음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듣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듣기도 한다. 쓰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쓸 수도 있다. 만약 낯선 지방에서 이런 발음을 만난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 채록한다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고전에 기록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이런 과정으로 채록했다. 아니면 채록하여 기록한 문헌을 참고하고 변형하면서 기록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사용한 한자들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그렇게 발음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지명을 발음할 때 짧게 줄여서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ㄹ'음은 붙이기도 하고 떼어버리기도 한다. '을'이라 하기도 하고 '흘'이라 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을 모르고 한자에 연연하여 풀이하다 보면 엉뚱한 해석을 하게 된다. 이 오름이 호미처럼 생겼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는 말은 서악(鋤岳), 서을악(鉏乙岳)처럼 이름에 '호미 서(鋤)' 혹은 '호미 서(鉏)'가 붙어 있는 데 이끌린 풀이다. 이 오름의 이름은 '설-', '서을-', '서월-', '소을-', '소흘-'일 뿐이다.

이런 이름을 붙인 사람들은 무슨 뜻으로 이렇게 불렀을까? 이 오름의 특징은 샘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특징이야말로 이름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퉁구스 고어에 '실-'이 있다. 샘, 우물을 지시한다. 드물게, 압력, 압박 혹은 우유를 짜다 같은 말로도 분화했다. 만주어와 남만주어에 '세리-', 나나이어 '세리' 등이 이에 대응한다. 따라서 설오름의 '설-'은 '설-', '서리-', '서얼-', '셀-', '세리-' 등으로 발음했을 것이다. 고대에 퉁구스어 중 만주어 혹은 나나이어를 쓰는 사람들이 들어왔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설오름이나 설개나 모두 맑은 샘이 있어 살기 좋은 곳

이와 거의 같은 지명이 여럿 보인다. 오늘날의 삼양1동이 대표적이다. 원래 설개, 소흘개, 소흘개마을, 서흘개마을, 소흘포, 서흘포, 소흘촌, 서흘촌 등으로 불렀다. 설개가 고형이다. 이 지명은 이후 위의 여러 지명으로 분화했다. 이 중 "설개란 서흘-개, 서흘-포라고 불렀다. 삼양1동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으로, 마을의 서쪽에 있던 포구 이름에서 연유한다. 탐라순력도에 '소홀포(所仡後滿)', 제주삼현도에 '소흘촌(所仡村)', 제주삼음도총지도에 '서흘촌(鋤訖村)' 등은 '서흘개'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라 본다." 제주시의 옛 지명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정도 되면 삼양1동의 옛 이름은 가시리의 설오름과 너무나 흡사하다. '마을'과 '오름'이라는 지명의 후부요소만 바꿔놓은 모양이다. 그리고 이 마을 지명도 "지형(地形)이 호미(鋤)처럼 생겼다는 데서 온 것"이라고 하는 설명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위의 책에서는 이런 해석을 '호미 서(鋤)'라는 한자에 이끌린 해석이라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이는 온당하다고 본다. 그러면서 '설개', '서흘개'는 돌들이 엉기정기 쌓인 곳을 뜻하는 '설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건 방향을 잘못 잡았다. 그렇다면 삼양1동의 해안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하게 돌들이 쌓여 있어야 할 것이다. 삼양1동 해안에서 이런 특징은 찾아볼 수 없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따라서 이런 설명은 이 지명의 본디 의미를 모르는 데서 오는 오해다. 설오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샘이라는 특성에서 기원한다. 삼양1동에는 '샛닥리물'이라는 매우 큰 샘이 있다. 이 샘 이름 '샛' 역시 '샘'이라는 뜻이다. '도리물'의 '도리'도 '샘'이라는 뜻이다. 이 샘을 중심으로 마을이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의 삼양1동이다. 설오름은 샘이 있는 오름, 설개는 샘이 있는 개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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