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읍리 유물산포지 1지구.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갈무리.
[한라일보] 신석기 시대 유물이 대거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지역 유물 산포지(매장유물 유존지역)가 3년 전 무참히 훼손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사태를 규명하기 위해 감사를 청구했다.
17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제주도감사위원회는 국가유산청의 감사 요청에 따라 서귀포시와 표선면을 상대로 성읍리 유물산포지에서 표본 조사 없이 공사가 진행된 경위를 파악하는 감사에 착수했다.
국가유산청 등에 따르면 성읍리 유물산포지는 신석기 시대에 생활했던 마을이 있던 곳이다.
지난 2005년 제주도 문화예술재단은 이 곳에서 발굴 조사를 벌여 신석기 수혈유구(땅에 판 구덩이로 집터나 무덤)와 적석 유구(돌로 쌓은 건물의 자취)를 다수 확인했다. 또 신석기 후기 단계에 출현하는 다양한 유문토기(무늬가 있는 토기)와 갈판, 숫돌, 공이 등 석기도 출토됐다.
성읍리 유물산포지는 도내에서 유물 분포 범위가 가장 넓어 총 6개 지구로 나뉜다. 이중 무단 훼손된 곳은 1지구다. 1지구는 6개 지구 중 신석기 시대 유물 존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전체 면적은 54만여㎡에 달한다.
무단 훼손 정황은 올해 6월 처음 포착됐다. 도 세계유산본부(이하 본부)는 1지구에 개인 땅을 소유한 A씨가 유물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표본 조사'를 하지 않고 창고 증축 공사를 한 사실을 파악했다.
매장유산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장유물 유존지역에서 4000㎡ 이상 규모의 개발사업을 하려면 미리 국가유산청과 협의를, 그 이하 면적을 개발하려면 지자체와 협의한 후 그 결과에 따라 공사를 해야한다.
최근 문제가 된 한림해상풍력발전 사업의 경우 개발 면적은 넓지만 매장유산 유존지역은 아니어서 땅 위에 유적·유물 분포 여부만 파악하는 '지표조사' 대상이지만, 신석기 유물이 출토된 성읍리 유물산포지는 개발 면적의 2%를 파내 유물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표본 조사 대상이다.
A씨의 공사 예정 면적은 4000㎡ 미만으로 표선면은 서귀포시와의 협의 결과에 따라 표본 조사를 이행하는 조건으로 증축을 허락했지만 A씨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본부 측은 A씨에게 공사중지명령을 내리고 현장 조사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더 큰 문제가 드러났다. 증축 공사가 시행된 부지가 이미 3년 전 무단 훼손돼 애초 유물 표본 조사 자체가 불가능 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무단 훼손 면적은 997㎡로, 3년 전 성토(흙을 쌓아 부지를 평평하게 하는 것)와 콘크리트 타설, 창고 신축 공사가 이미 마무리 된 상태였다. 3년 전 문제의 공사는 B씨가 했으며, A씨는 B씨로부터 해당 부지를 매입해 증축 공사만 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도 표본 조사 없이 공사를 했지만, 이 둘에겐 법적 책임을 묻기 힘들다. A씨는 표본 조사가 불가능한 상태로 이미 형질이 변경된 땅을 매입해 공사를 한 것이고, B씨는 표선면으로부터 표본 조사를 이행하라는 통보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취재 결과 B씨가 한 문제의 공사도 서귀포시와의 협의 결과에 따른 표본 조사 이행 대상이지만 담당 공무원이 이런 사실을 B씨에게 고지하지 않고 2021년 4월29일 건축 허가를 승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의 고지 절차 누락으로 유물산포지에서 표본 조사 없이 공사가 진행된 것은 도내에서 처음 있는 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훼손된 유물산포지는 주변 높이를 고려할 때 1m 가량 성토된 것으로 추정되고, 콘크리트로 뒤덮인 상태라 문화재 유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굴착도 어려운 상태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해당 부지 밑에 유물이 실제 존재하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며 "앞으로 콘크리트를 파내는 공사가 예정될 경우 유물 표본 조사를 미리 이행하라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담당 공무원이 어떤 이유로 고지 절차를 누락했는지 그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감사를 청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 감사위 관계자는 '해당 공무원에게 어떠한 처분을 요구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조사 초기 단계라서 수사 의뢰 대상인지, 징계 요구로 끝날 사안인지 예측할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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