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91] 3부 오름-(50)성불오름이란 샘이 있는 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91] 3부 오름-(50)성불오름이란 샘이 있는 오름
엉뚱하게도 염불하는 스님으로 둔갑한 오름
  • 입력 : 2024. 07.23(화) 01: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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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 지명 유래를 불교에서
찾는 건 이해 부족의 소치


[한라일보] 성불오름은 자체높이 97m로 보통 크기의 오름이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다. 등성마루 두 봉우리 사이 골짜기에 샘이 솟는다. 이 샘은 성불오름 샘, 성불오름 물 혹은 성불천(成佛泉)이라고도 한다. "옛날에 어떤 스님이 움막을 짓고 기도하다가 성불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성불오름 주변에 성불암이란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주로 장기동(장터) 사람들과 성읍리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다." 북제주군의 지명 총람에 나오는 얘기다. 장기동이란 현재의 대천동을 말한다. 지금도 이곳에는 이 물을 쓰기 위해 매설한 수도관을 볼 수 있다.

성불오름물, 성불오름 등성마루 양쪽 봉우리 사이 골짜기에 있다. 김찬수

고전에도 이 샘을 성불천(成佛泉), 성불암천(成佛庵泉)이라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1653년 '탐라지' 등에 성불악(成佛岳), 성불(成佛(-오름)), 성불암(成仏岩), 성불암(成佛岩) 등으로 나온다. 오름의 표기명이 처음 나타나는 17세기 성불악이라고 했던 것을 19세기에 들어와 성불암으로 바뀐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스님이 성불했다거나 성불암이란 암자가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생긴 것은 성불암이라는 한자명에서 유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성불천(成佛泉), 성불암천(成佛庵泉)이란 이 샘 이름이 오름의 지세가 중이 염불하는 모양과 같다는 데서 붙인 것이라는 전문가도 있다. 그런 점에서 '성불'이라는 오름의 이름도 유래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와 주장을 마주할 때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다. 어쩌다가 이 오름의 이름이 한자어로 부르게 되었나 하는 것이 첫 번째 의문이다. 한자가 들어와 널리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에 이 오름의 이름이 붙었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두 번째 의문은 한자가 들어오기 전엔 이름이 없었다거나 있었다면 무엇이라고 했을까 하는 점이다. 한자라는 문자만이 아니라 불교라는 종교 역시 널리 퍼져 일반에 보편적이어야 이런 이름이 붙을 수 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오름은 그때까지 이름이 없었다는 것일까?





성불은 '샘부리'에서 기원,
아이누어 전문가의 탁견


이런 의문을 해소하고자 어원을 해명하려 한 학자가 있었다. 제주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아이누어 전문가 김공칠 교수다. 그는 원래 '사+ㅣ+ㅁ+부리'에서 성불오름의 이름이 기원했다고 한다. 중세어에서 샘은 '사+ㅣ+ㅁ'이다. 이를 한자로 훈차하자면 '천(泉)'이라고 하면 된다.

성불오름, 대천교차로에서 성읍 방향 1.5㎞ 지점 오른쪽에 있다. 오름해설사 김미경

그러나 음차하려면 적절한 한자가 없다. 그래서 그에 가까운 '성(成)'자로 나타낸 것이라는 풀이다. 사실 설명이 좀 길지만 성(成)의 'ㅇ' 받침은 후속하는 '불(佛)'자의 첫소리 p음에 의해 역행동화 하면 자연적으로 'ㅁ' 받침이 나오게 되므로 '셤'과 같이 되어 '사+ㅣ+ㅁ'에 가까운 음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제주 사람에게는 '아+ㅣ(사+ㅣ+ㅁ)~애(샘)'의 발음이 어려워 거의 '에(셈)' 음으로 나오게 되므로 더욱 그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성불악(成佛岳)이라는 기록이 처음 나타나는 17세기 초반엔 제주도 사람들은 이렇게 발음했을 것이다. 이를 한자로 기록한 것이 성(成)이다.

그렇다면 '불(佛)'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기서 '불'이란 산을 나타내는 '부리'에서 나온 음이라고 설명한다. 인접한 '산굼부리'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이누어에서 산을 '누푸리'라 하는데 같은 어원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성불악(成佛岳)을 스님이니 절이니 염불이니 하는 불교적 언어에서 설명하려고만 했던 여타의 학자들과는 달리 어원에서 찾으려 했던 건 대단히 선구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불악을 '성불한다'는 데서 온 것이 아니라 '샘이 있는 산'이라는 뜻에서 온 것이라는 해석은 탁견임이 분명하다.



개인적 관념을 논리 전개에
끌어들이는 것은 위험



그러나 지난 회에서 설명했다시피 '설오름', '설개' 같이 이보다 더욱 고어형이 제주어에는 면면히 내려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좀 더 깊은 검토가 필요하다. 제주어가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는 과정은 반드시 한반도를 거쳐서 온 언어의 집합이나 진화의 결과만이 아니다. 한반도를 거쳤더라도 아주 짧은 기간, 아니면 언어의 뒤섞임이 일어나기 훨씬 전이거나 한반도를 우회, 또는 다른 경로로 온 언어사회의 존재를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설오름과 설개의 '설-'은 고대 퉁구스어 중 만주어 혹은 나나이어를 쓰는 북방 사람들은 '설-', '서리-', '서얼-', '셀-', '세리-' 등으로 발음했다. 성불오름 역시 샘이 있는 오름이다. 같은 어원이다. '불(佛)' 역시 산을 의미한다고 할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말은 같은 퉁구스어권의 나나이어와 솔론어에서 '뷰리'가 샘을 지시한다. 만주어를 비롯한 여타의 방언에서도 이와 유사한 발음으로 나타난다. '불'이 '성'보다 나중에 나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샘을 '설'이라 했던 언어집단이 들어온 이후에 '뷰리'라 했던 집단이 들어왔을 것이다. 따라서 성불오름은 한자로 成佛岳(성불악)이라 표기한 17세기 이전에는 '셀뷰리올(오름)' 혹은 '설부리올(오름)' 등으로 발음했을 것이다. 이 발음은 점차 '셈부리', '셍불' 같은 발음으로 변했을 것이다. '샘+샘+오름'의 구조다.

이 오름의 지세가 염불하는 스님의 모양을 닮았다는 데서 성불오름이라 했다는 설명은 개인적 감상이거나 경험이다. 이런 사적 관념을 논리 전개에 끌어들이는 것은 객관성을 지향하는 영역에서는 받아들이기 난감하다. 성불오름이란 샘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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