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정상 등정의마지막 베이스캠프 윗세오름
[한라일보] 1994년 서북벽을 통한 정상 등정이 금지됐다. 어리목탐방로와 영실탐방로로 오르는 사람들이 윗세오름대피소를 거쳐 이곳을 통과하게 되어있었다. 탐방객들은 바위를 쪼아 만든 외길계단을 통과하기 위해 길게 늘어서야 했다.
이 두 탐방로를 오르는 사람들은 등반을 시작하자마자 윗세오름대피소를 염두에 두기 시작한다. 이 대피소는 1974년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점차 윗세오름은 한라산 정상 등정의 마지막 베이스캠프라는 인식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윗세오름이란 어느 오름인가? 이곳에 3개의 오름이 연달아 있다. 그중 가장 낮은 오름을 윗세족은오름이라 한다.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 산 183-6번지다. 두 번째는 윗세누운오름이라 한다. 서귀포시 영남동 산 1-1번지다, 가장 높은오름은 윗세붉은오름이다. 서귀포시 서호동 산 183-1번지다.
가장 왼쪽이 윗세오름(붉은오름), 가운데가 세오름(누운오름), 가장 오른쪽은 윗세족은오름으로 부르는 봉우리다. 윗세오름 자락에 대피소 건물이 보인다. 김찬수
오늘날의 설명을 보자면 '윗' 혹은 '웃' 세오름이란 위에 있는 세오름이라는 뜻으로 아래쪽에 있는 세오름에 대응되게 부르는 것으로 고유지명이 아니라고 한다. 아래쪽에 있는 세오름이란 1100고지 휴게소 바로 뒤쪽에 있는 세 개의 오름을 일컫는다. 서귀포시 중문동에 해당한다. 높이는 각각 해발 1053.1m, 1112.8m, 1142.5m이다. 높은 순서로 세성제큰오름, 세성제셋오름, 세성제말젯오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윗세오름이란 이 세성제오름보다 위쪽에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어떤 자료를 봐도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왜 하필 이 세성제오름보다 위에 있는 것이 중요한지, 세성제오름은 알세오름이라 하지 않는데 왜 윗세오름만 세성제오름을 기준으로 위에 있는 것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누가 무슨 연유로 이렇게 처음 이야기했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설명이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윗세오름 지명 유래
우선 세성제오름에서 윗세오름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윗세오름에서도 세성제오름은 보이지 않는다. 세성제오름에서 윗세족은오름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6㎞이다. 이 사이에는 장오름, 왕오름, 볼레오름, 어스렁오름, 이스렁오름, 영실계곡 능선들이 있다. 이 고산준령이 가로막혀 직접 관측이 불가능하다. 또한, 굳이 삼형제오름과 대비하려면 이런 오름들과도 할 수 있을 텐데 왜 하필 더 멀고 보이지도 않는 오름들과 대비지명을 썼는지 수긍하기 어렵다.
이렇게 세성제오름보다 위에 있어서 윗세오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는 1995년 김종철의 오름나그네라는 책이 처음인 것 같다. 이 책에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니 알 도리는 없다. 다만 윗세오름과 세성제오름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세'의 어감이 '셋(三)'을 연상시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정할 뿐이다.
윗세오름대피소 남서쪽 360m, 이 오름의 남쪽을 세오름밧이라 한다. 시오름밧이라 발음하는 이도 있다. 숫자 셋을 뜻하는 제주 방언 '시 개'에서 온 것으로 세오름밧과 시오름밧은 같은 지역이라고 했다. 한라산국립공원에서 발간한 한라산의 지명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요한 내용이다. 연접한 땅 이름에 세오름밧 혹은 시오름밧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세' 혹은 '시'라는 말을 '삼(三)'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양송남의 한라산 이야기라는 책에는 세 개의 오름을 통틀어 시오름밭이라 한다고 나온다.
윗세오름의 가운데 누운오름이라고도 하는 오름 남서쪽 자락에 노루샘이 있다. 반대편 어리목 등반로 옆에도 오름약수라는 샘이 있다. 이건 중요한 요소다. 샘이란 산상 생활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명에 반영되게 마련이다. 표선면 가시리 설오름을 고전에는 '설-', '서을-', '서월-', '소을-', '소흘-' 등으로 표기했다. 이 부분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퉁구스 고어에 '실-'이 있다. 만주어와 남만주어에 '세리-', 나나이어 '세리' 등이 이에 대응한다. 따라서 설오름의 '설-'은 '설-', '서리-', '서얼-', '셀-', '세리-' 등으로 발음했다. 퉁구스어 '실-', 만주어 '설-'이 샘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ㄹ'이 탈락한 형태가 '세-' 혹은 '시'다.
세오름, 시오름, 세성제오름,모두 북방기원 고대인의 유산
세오름이니 시오름이니 하는 지명은 바로 샘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이 누운오름의 옛 지명은 세오름 혹은 시오름이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세성제오름의 '세-'도 같다. '성-'은 성불오름과 성널오름에서 보이는 '성-'과 같다. 세성제라는 말은 언어습관과 연상작용으로 이끌려 나온 측면이 강하다. 세성제오름의 '셋오름'에도 샘이 있다. 모두 퉁구스어 혹은 만주어를 쓴 고대인의 유산이다. 소중한 고유지명들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그럼 윗세오름은 어느 오름일까? 세오름의 위에 있는 또 다른 세오름을 윗세오름이라고 한 것이다. '또 다른 세오름'이란 이 세오름(윗세누운오름)이라고 하는 '샘오름' 위쪽의 '또 다른 샘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으로 쓴 것이다. 오늘날 붉은오름이라고 부르는 오름이다. 이 붉은오름에도 샘이 있다. 윗세오름대피소에서 동북 방향 200m 계곡에 한라산샘터 혹은 윗세샘이 있다. 특히 붉은오름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400m 정도에는 수량이 풍부한 백록샘이 있다. 참고로 붉은오름 정상에서 누운오름 정상까지는 직선거리 650m다. 붉은오름도 샘이 있는 오름인 것이다.
그러니 세오름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나 노루샘과 오름약수가 있는 세오름과 구분하기 위해 '윗'세오름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외에도 샘이 있는 오름의 샘을 '시', '세', '새'라고 한 지명은 이 일대에 또 있다. 세오름 혹은 시오름이란 누운오름을 말하는 것으로 '샘이 있는 오름', 윗세오름이란 '세오름 위의 또 다른 세오름'이란 뜻으로 붉은오름을 지칭한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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