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행복을 찾아서

[영화觀] 행복을 찾아서
  • 입력 : 2024. 08.23(금) 02: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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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국이 싫어서'.

[한라일보] '헬조선'과 '소확행'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거리가 존재할까. 가끔은 저 두 조어들이 사실은 등을 딱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넘치는 불만 속에서도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잡아 드는 작고 가느다란 행복은 누군가의 순간을 살아 있게 만들고 이제는 완전히 분실했다고 믿고 있는 안도의 와중에도 불행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삶은 늘 그렇게 이상하고 신기할 정도로 입체적인 조형물이다. 온 힘을 다해 한 바퀴를 여러 차례 돌아보며 꼼꼼하게 살펴 보아도 늘 새로운 오탈자가 눈에 띄는 나의 소중한 파본과도 같은. 그리고 우리는 이런 각자의 인생이 싫고 밉고 아쉽고 기특하고 소중하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장건재 감독, 배우 고아성, 주종혁, 김우겸 주연의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한국을 떠난 주계나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마을 버스와 지하철 환승을 합쳐 도합 왕복 4시간의 출퇴근과 맘에 들지도, 맘에 들 수도 없는 직장 생활을 그야말로 유지어터처럼 감당 중인 20대 후반의 여성 주계나(고아성)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이다. 7년을 성실하게 사귄 취준생인 남자 친구가 있고 재개발로 아파트 생활을 꿈 꾸는 친밀한 가족이 있는 주계나의 워라벨은 대한민국의 평균치와 비교하자면 아주 나빠 보이진 않는다. 적어도 그의 곁에는 사랑을 주고 받을 타인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나의 이 외적인 균형은 어쩐지 위태롭게 흔들린다. '누구나 그러고 살아'와 '참고 살면 좋은 날이 온다'는 버티기의 경구들이 도무지 계나의 심장에는 박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자의 눈에 띄어 결국 잡아 먹히는 야생의 톰슨 가젤처럼 계나는 자신이 속한 무리에서 뛰쳐 나오기로 결심한다. 설령 눈에 뛰어 잡아 먹히더라도의 각오로 말이다. 더 이상은 유지어터로 살아 남기를 포기한 계나는 자신의 체질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행복을 찾아 타향인 뉴질랜드로 떠난다.

'행복을 찾아서', '사랑을 위하여'같은 말들이 사어처럼 느껴지는 시대다. 어쩐지 불행은 사전을 박차고 나와 도처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원시림의 주인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이 험난한 야생에서 행복이란 말이 그저 속 편한 자기 위안의 주문이 아닐까 불안해 한다. '한국이 싫어서'에는 헬조선의 갖가지 요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비단 계나가 아니어도 이 곳에 발을 붙이고 사는 모두에게 위협으로 느껴지는 감각들이다. 게다가 이제는 타인의 삶을 핸드폰 하나만으로도 엿볼 수 있는 시대다. 소확행을 전시하는 남의 순간들, 비교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타인의 물결들이 만들어 낸 급류 속에서 많은 개인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딘가로 떠밀려 가고 있다. 영화 속 계나는 타인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뿌옇게 흐려진 시야 속에서도 스스로를 바라보려 애쓰는 이다. 스스로가 정한 목표는 행복이기에 계나의 여정은 계획적일 수 없다. 행복의 형태가 정해져 있다면 계나가 그토록 헤매였을 리 없다. 한국이 싫어서 뉴질랜드로 떠난 계나는 새로운 땅을 일정 부분 좋아하게 된다. 그 좋음의 감각은 계나가 스스로에게 쥐어준 형태다. 손에 잡히는 형태의 질감과 양감이 계나를 다시 계나로 만든다. 물론 지옥을 벗어나자마자 천국으로 가는 직항 편은 어디에도 없다. 불안의 감각이 조금도 없는 천국이 있다면 그것은 산 자의 공간일리도 없을 것이다.

한국이 싫어서, 행복을 찾아서 떠난 계나가 도착한 낯선 곳에서 계나는 싫고 좋았던 한국의 조각들과 타국에서 찾아낸 미세하지만 분명한 행복과 불행의 조각들을 더해 인생의 시기를 채운다. 퍼즐은 단박에 맞춰지지 않지만 계나가 원한 것의 형태는 조금 더 분명해 진다. '한국의 싫어서'는 해피 엔딩이라는 착륙을 지연시키는 영화다. 영화의 마지막 계나는 보는 이들이 가늠할 수 없는 출발선에 다시 선다. 그가 찾아낼 것이 행복일지, 그가 두고 온 것이 행복일지 누구도 판단하기 힘들다. 다만 계나는 이제 스스로의 삶을 언제든 출발시킬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이륙의 감각을 몸에 새긴 이가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계나가 떠날 이유가 그리고 돌아올 이유가 단일하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는 영화의 마지막을 목격한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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