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러브 미 라이크 디스

[영화觀] 러브 미 라이크 디스
  • 입력 : 2024. 08.30(금) 02: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영화 '빅토리'.

[한라일보] 날카로운 냉소와 무해한 다정, 극과 극에 위치한 것 같은 말들 사이에서 어느 한 쪽으로도 넘어가지 못하는 기분일 때가 많은 요즘이다. 세상은 점점 극악무도하게 변해가고 있고 한편으로는 이 모든 잔인한 변화들에 몸을 사리며 최소 집단의 안위 속으로 숨는 일이 영리한 선택으로 여겨 지기도 한다. 미래를 비관하는 동시에 찰나를 낙관하는 일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라고 스스로의 안으로 침잠하다 보면 결국 차갑지도 뜨겁지도 못한, 뜨뜻미지근한 상태의 나와 종종 마주치곤 한다. 정말이지 이 어려운 세상을 이렇게까지 어려워하면서 살아도 되는 걸까. 뜨겁게 열광하고 따뜻하게 찬란했던 시절은 다시 꿈 꾸기 불가능해진 것일까.

박범수 감독의 영화 '빅토리'는 1999년 거제에서 치어리딩을 하게 되는 소녀들의 이야기다. 어쩌면 진짜로 종말이 올 지도 모르는 것처럼 과연 무엇이 자신 앞에 다가올 지 확신할 수 없는 십대 후반의 시기, 청춘들은 각각의 꿈을 모아서 '밀레니엄 걸즈'라는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든다. 주축은 절친인 힙합 듀오 필선(이혜리)과 미나(박세완)다. 품행이 방정치 못해 학교를 1년 더 다니게 된 둘은 실컷 춤을 추고 싶은 마음으로 치어리딩 경력이 있는 전학생 세현(조아람)을 설득한 뒤 교내 오디션을 통해 동아리 부원들을 모은다. 실력이 변변치 않은 교내 축구팀의 사기 진작과 성적 향상을 배포 있게 약속한 '밀레니엄 걸즈'는 그렇게 한 치 앞도 모를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빅토리'는 영화의 제목인 '승리'를 향해 달려가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성공이라는 결과나 성취라는 획득보다는 한 판의 승부가 펼쳐지는 무대, 그 무대가 만들어내는 스펙트럼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모두의 인생에는 각자의 무대가 있고 그 무대에는 누군가를 둘러싼 수많은 겹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덩그러니 혼자서 시작한 무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무대를 만들어준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텅 빈 공간에는 어느새 낯선 누군가가 다가와 익숙한 곁이 되곤 한다. '빅토리'는 경기장이라는 게임의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외곽의 무대들을 차곡차곡 맞대어 포개면서 승리의 쾌감보다 더 또렷하게 귓가에 울리고 새겨지는 응원의 함성을 관객들에게 전이 시키는 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한 가지 장르로 정의하기 힘들다. 축구라는 종목을 다루고 있는 스포츠 영화인 동시에 치어리딩 동호회를 만든 여성들의 성장 영화이고 꽤 큰 비중으로 가족 영화인 동시에 거제라는 지역의 특수성을 잘 담아낸 지역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케이팝의 글로벌화가 이루어지기 전 세기말의 대중 가요들을 풍성하게 들려주는 음악 영화로서의 매력 또한 충분하다. 어쩌면 이 수많은 장르들이 무겁고 불필요했을 법도 했을 텐데 '빅토리'는 의외로 가뿐하고 경쾌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이유는 다시 제목에 있다. 영화가 원한 건 꿈이 이루어져야 하는 결과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신나게 응원하는 것, 그게 누가 되었건 그 응원을 어디에서 하게 되건 말이다.

가끔 어떤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아님에도 손에 대면 닿을 것 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인물들을 '빅토리'는 만들어냈다. '빅토리'는 근사한 영웅도 비정한 악인도 주인공이 될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훤칠한 미남도 짜릿한 로맨스도 다른 나머지를 압도할 기회를 잡지 못한다. 영화 속 대사인 '깍두기론'처럼 그 수많은 요소들을 차마 버리지 못한 채 손을 잡고 가느라 누구 하나만을 위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많은 씬들은 완벽하게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다른 풍경들과 오버랩 된다. 세상만사 깔끔하게 끝나는 일은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옷 매무새를 정돈하는 시간보다 마음을 다잡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완벽하지도 화려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영화가 내게도 손을 내미는 것처럼 여러 번 느껴졌다. 나는 분명 객석에 있는데 이 영화는 나 또한 자신들의 무대에 초대해 주는 것 같았다. 90년대 인기 가요였던 그룹 노이즈의 '너에게 원한건'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너에게 원한 건 어려운 고백은 아냐. 날 사랑해주는 것만큼 표현해 주는 것, 내가 느낄 수 있도록'. 어쩐지 이 가사가 내내 벅찬 응원가를 들려준 '빅토리'가 내게 건네는 딱 한 가지 부탁처럼 느껴진다. 그럼요, '빅토리' 사랑합니다. 더 많이 사랑 받기를 응원합니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전문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5522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