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97] 3부 오름-(56)세미소오름과 세미수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97] 3부 오름-(56)세미소오름과 세미수오름
수수께끼 같은 삼의양오름과 세미소오름 지명
  • 입력 : 2024. 09.03(화) 06: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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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의양오름에 끼어든 ‘양’, 그 기원은 무엇?


[한라일보] 제주시 아라동에 세미오름이 있다. 표고 574.3m, 자체 높이 139m다. 5·16 도로를 두고 제주국제대학교와 마주하고 있다.

세미소오름의 세미소, 세미수에서 기원한 지명이다.

산정 분화구 남쪽 사면으로 작은 골짜기를 볼 수 있는데, 용암 유출 흔적이다. 이 골짜기의 꼭대기쯤에서 샘이 솟는다. 이로 인해 세미오름이라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한자음을 빌어 삼의양악(三義讓岳), 삼의악(三義岳)으로 불린다고 소개한다.

1653년 '탐라지'에 나오는 삼의양악(三義讓岳)을 비롯해 고전에 다양하게 기록됐다. 네이버 지도에는 세미오름, 카카오맵에는 삼의악오름으로 표기했다.

이같이 이 오름의 지명은 사미악(思味岳), 삼매양악(三每陽岳), 삼양봉(三陽峰), 삼의악(三義岳), 삼의악오름, 삼의양악(三義壤岳), 삼의양악(三義孃岳), 삼의양악(三義讓岳), 삼의양악(三義陽岳), 세미오름, 천미악(泉味岳) 등으로 대략 11가지로 추출된다. 사미악(思味岳)은 샘이악을 음가자로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삼의악(三義岳)도 같은 경우다. 그러나 세미오름은 현지 발음을 그대로 적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천미악(泉味岳)은 '샘 천(泉)' + '미'의 구성이므로 훈독자+음가자로 차자한 것이다.

많은 이를 혼란에 빠뜨린 표기는 삼매양악(三每陽岳), 삼양봉(三陽峰), 삼의양악(三義孃岳), 삼의양악(三義讓岳), 삼의양악(三義壤岳), 삼의양악(三義陽岳) 등에서 보이는 '양'이라는 글자다. 이 표기를 설명한 내용을 보면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중의 한 예를 보자. '양'이란 壤, 孃, 讓, 陽 등 네 가지로 나타났는데, '양'의 음가자 표기로 생략되기도 하지만, 이 글자들이 무얼 지시하는지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의양오름 '양', 평양의 '양'과 기원이 달라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고구려어 '땅'의 뜻에 대응하는 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이런 풀이는 고구려어에 땅의 뜻으로 '양'이라고 한다는 것은 알지만, 이 '삼의양악'의 '양'과는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면서 이 지명은 '세미양오름'의 한자 차용 표기라고 결론지었다. 특히 이런 풀이 결과로 '세미양오름'이라고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구려어에서 땅을 지시한다는 '양'이란 '평양(平壤)'에서 보이는 '양(壤)'을 염두에 둔 듯하다. 이 표기는 '발나'를 훈차한 표기다. '발'이란 평평하다는 뜻이요 '나'는 땅이라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삼의양오름의 '양(壤, 孃, 讓, 陽)'이란 이와는 관계가 없다. 여기서 '양'이란 언어습관이 낳은 첩어의 하나다. 삼의악오름이란 샘이 있는 오름이란 뜻이다. 원래는 샘오름이란 뜻으로 세미오름이라 불렀을 것이다. 이러던 것이 한자로 표기하면서 삼의악으로 되었는데, 여기에 오름이라는 말이 덧붙어 삼의악오름이 됐다. 이렇게 되면 '삼의+악+오름'의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명의 전부요소인 '세미'와 후부요소인 '악오름'을 연이어 발음하기가 순조롭지 않다. 사람들은 이 표기를 발음하면서 무심결에 '세미앙오름' 즉, '악'을 '앙'으로 발음하게 된다. 국민을 '궁민'으로, 악령을 '앙녕'으로 발음하는 것과 같다. 일종의 자음접변 혹은 동화현상으로 설명하는 음운변화의 하나다. 이런 과정으로 삼의악이 '삼의양'으로 발음하게 된 것이다. 제주시 삼양동은 원당오름의 원래 이름 세미오름이 세미악을 거쳐 세미악오름, 세미앙오름, 삼양오름으로 분화해 기원한 지명이다.



세미소오름? 세미수오름? 물이 흐르거나 괸 곳


세미소오름이 있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있다. 표고 374.8m, 자체 높이 30m의 낮은 오름이다. 고전에는 천미소악(泉味沼岳), 사미소악(四美所岳) 또는 천미악 등으로 표기하였다. 원형의 분화구에 둘레 약 400m로 축구장 정도만 한 못이 있다. 이 못을 세미소 또는 세미수라고 한다. 천미수(泉味水) 혹은 세미수(細味水)라는 표기도 있다. 오름의 지명 세미소오름은 이 못이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세미소오름 혹은 세미수오름의 지명은 무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아라동 세미오름 혹은 삼의악오름에서 보이는 것처럼 샘이 있는 오름을 지시하는 이름이다. 그런데 여기 '소' 혹은 '수'가 수상하다. 왜 '所(소)'라고도 하고 '水(수)'라고도 할까? 어느 책에는 세미소의 '소'는 깊은 못의 옛말이라 설명했다. 소(沼)라는 단어를 염두에 둔 설명이다. 그러나 '소'란 한자어가 아니다. 또 어느 책에는 이 못을 천미수(泉味水), 세미수(細味水)라고 표기한 사례를 들면서, 여기서 '수(水)'는 '소'의 유사음이라고 하였다. 이 또한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다. '소'가 본디 발음이라는 근거가 미약하다. 현실적으로 도내에서는 '소'보다 '수'를 더 흔히 쓴다.

이런 지형을 알타이 제어에서는 '쇼구'를 어원으로 분화했다. 그중 퉁구스어에서는 '시기', 몽골어에서는 '시갈', 돌궐어에서는 '슥'이 이에 대응한다. 동쪽으로 가면서 이 말은 점차 제주어에서 보이는 '수'에 가깝게 발음한다. 특히 일본어에서는 '스이(すい)' 라고 발음하고 '수(水)'라고 표기한다. 단순히 물(water)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 흐르거나 괸 곳을 지시한다. 세미소 혹은 세미수의 '소' 혹은 '수'는 이와 같은 뜻이다. 세미수오름이 고어형일 것이다. 이것이 점차 깊은 물이라는 뜻의 '소(沼)'에 영향을 받아 세미소오름으로 변했다. 세미소오름이란 샘에서 솟아 나온 물이 괸 오름이란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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