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또 대출 받았어요"… 씁쓸한 명절 쇠는 체불 노동자

[현장] "또 대출 받았어요"… 씁쓸한 명절 쇠는 체불 노동자
제주시에서 중장비 인력업체 사무소 운영하는 강모씨
정산받지 못한 공사대금 1억 넘어… 대출금은 '눈덩이'
"명절 비용·직원 상여금 지급위해 다시 은행에서 대출"
  • 입력 : 2024. 09.12(목) 20:00  수정 : 2024. 09. 17(화) 12:57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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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중장비 인력업체를 운영하는 강 모씨는 인터뷰를 빌어 "직원들만이라도 행복한 추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상국기자

[한라일보] "정산을 받지 못한 금액만 해도 1억원이 훨씬 넘어요. 가족들과 명절도 보내야 하고 직원들한테 상여금도 줘야 하는데 별 수 있나요. 또 대출을 받았죠."

추석 연휴가 얼마 남지 않은 12일 제주시내 한 중장비 인력업체 사무소. 주차장에 우두커니 세워져 있는 크레인을 쓰다듬는 대표 강모(53)씨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만이 맴돌았다.

상인들에게 명절 대목이 있는 것처럼 이맘때 중장비 기사들은 대금을 신속하게 지급받았다. 기사들은 이것을 건설업의 대목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예고 없이 찾아온 불경기에 대목은 옛말이 됐고, 기사들은 제때 보수를 받는 것도 힘든 지경이 됐다. 모아놨던 돈은 이미 생활비와 세금, 보험금으로 다 들어갔다. 통장은 '텅장(텅 빈 통장)'이 된 지 오래고, 예·적금 통장도 줄줄이 해지했다. 그럼에도 말 그대로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니 결국 강 대표는 은행의 도움까지 빌려야 했다.

강 대표의 독촉에 사업자들은 하루만 기다려 달라더니 한 달, 일 년이 지나도록 보수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못 받은 돈만 수억 원에 달했다. 이와 비례해 대출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수금이 되는 대로 갚아야겠다던 대출은 이제는 겨우 이자만을 갚는 정도가 됐고, 원금은 언제 갚을 수 있을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 명절이 다가오니 강 대표는 직원들 상여급 지급 여부까지 고민했다. 그러나 직원들의 얼굴에 드리운 근심을 보는 순간 다시 대출을 받았다. 본인은 씁쓸한 명절을 쇠더라도 직원들은 행복한 명절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말이 대표지 저도 직원들과 똑같이 일용직입니다. 제가 일을 해서 못받은 금액도 있고 직원들이 못받은 금액도 있고. 시위부터 소송까지 안 해본 게 없어요."

강 대표는 사법과 행정기관에 모두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했다. 강 대표를 비롯해 직원들이 대부분의 공사에서 계약서 작성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이들을 포함한 중장비 기사들에게 계약서 작성은 쉽지 않다. 사업자 측은 번거롭다는 이유에서 꺼려하고, 심지어는 기사가 요구할 경우 다른 기사를 부르겠다며 돌아가라는 경우도 있다. 계약서가 없는 이들에게 행정당국은 오히려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질 수도 있다고 했고, 똑같은 이유로 소송도 질게 뻔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시위였다.

강 대표는 거리로 나왔다. 강 대표의 모습을 본 사업자는 처음에는 대금을 조금씩이라도 지급하는 듯 하더니 얼마 가지 않았다. 오히려 내용증명을 보낸 강 대표에게 "이런 것 다 소용없다는 거 잘 알고 있지 않냐"고 비웃기까지 했다.

그렇게 강 대표는 점점 포기와 체념을 습득했다. 이제는 5년 이상 체불에 대해서는 독촉할 의지도 상실했다. 20년 넘게 해온 일을 정리할까도 수없이 고민해봤지만, 남은 가족들과 직원들을 보면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결국 이번 명절에도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할 뿐이었다.

강 대표는 "IMF 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면서 "하루하루가 힘든 상황이라 명절이 다가왔는데도 즐거운 마음이 들다기보다는 걱정부터 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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