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75)한림읍 협재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75)한림읍 협재리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미래가 기다리는 마을
  • 입력 : 2024. 11.01(금) 02:1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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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노래 가사 속에 담긴 뜻을 먼저 만난다. 광복 이전에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노래가사다. 함께 부르며 애향심을 키웠을 것이다. <조선반도 극남단 제주 협재리 / 경치 좋고 화려한 이곳이로다 / 동남에는 높고 높은 한라산이요 / 서북에는 넓고 넓은 맑은 바다라 / 북편에 우뚝 솟은 장한 비양도 / 북풍한설 막아서 있고 (중략) 재암굴 속 솟아나는 샛굴물은 수만인의 남녀노소 목욕통이요 / 명사중에 솟아나는 맑은 통물은 수백호의 좋은 인심 기려 마시네> 마을공동체에 대한 자긍심 교육을 통해 애향의 가치관을 불어 넣어주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눈여겨지는 것은 마지막 대목이다. 같은 물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좋은 물과 좋은 인심을 결부시킨 것. 협재리는 진취적이고 선각자적인 인사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라는 것을 이 마을 노래의 연원을 찾아가면 더욱 확신하게 된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CNN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절경 중에 전국의 쟁쟁한 절경들과 함께 소개된 적이 있다. 비양도와 어우러진 에메랄드 빛 바다색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으니 당연하다. 상명리 지경인 느지리 오름에서 바라보면 참으로 오묘하게 포근하다. 바다에 떠있는 비양도가 모든 시각적 모티브를 제공하는 마을. 섬에서 섬을 바라보는 즐거운 경험을 관광객들에게 선물하는 협재해수욕장은 매력 천만점의 해변이다.

제주국제공항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32㎞ 지점에 위치한다. 동쪽은 옹포리, 서쪽은 금능리, 남쪽은 상명리와 월림리가 이웃해 있다. 마을 속으로 깊이 들어가보면 관광자원의 보물창고다. 채암천과 세심천,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 소천굴과 한림공원 안에 있는 쌍용굴 등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곳에서부터, 70년대 초반에 개척정신을 발휘해 황무지를 아름다운 관광자원으로 탈바꿈시킨 한림공원까지 마을 전체를 돌아다니다 보면 끌리는 곳이 수두룩 하다. 그래서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와 관광숙박시설과 요식업소를 차려서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투자 가치가 높은 마을이라는 현실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어르신들이 전해주는 설촌의 역사는 8백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挾才라는 마을 명칭은 인재들의 영향력이 두루 펼쳐진 마을이라는 유교적 이상을 담고 있다. 마을 이름에 책임을 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 많은 인재들이 배출돼 세상에 공헌하고 있으니 마을 이름 자체가 소중한 훈육자산이 될 수 있도록 한 선조들의 지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추억하는 어린시절 모습은 이렇다. "옛날에는 모래밭이 많았지요, 척박한 땅을 이겨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였어요, 부지런!" 세상에서 가장 존경 받는 부자는 '부지런 부자'라고 하는 제주인들의 정신적 자양분을 가득 담고 있는 운명적인 마을이다. 주변 마을 사람들도 인정하는 것이 '지독하게 부지런한 사람들'이라는 인식.

장성민 이장에게 협재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자긍심을 물었더니 대뜸 한 단어로 대답하였다. '주인의식' 마을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겠지만 마을의 일을 결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조상 대대로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어디든 당연하리라 생각하겠지만 협재리가 해수욕장 운영에서부터 마을 현안들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들을 보면 근본적으로 '무슨 집안일 대하 듯' 한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소중한 마을 발전 역량이 있을 수 있을까? 작년부터 시작하여 5년 동안 진행되는 '농산어촌 개발 / 행복한 삶터 조성'이라고 하는 해양수산부 사업을 협재리가 추진하게 된 것도 이러한 주민들의 결집역량을 높이 평가하여 이뤄진 것이리라. 이 사업이 완료된 이후의 협재리 모습은 이전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지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마을도 경쟁력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절감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마을공동체의 노력이 눈부시다. <시각예술가>



바람과 모래 풍경
<수채화 79cm×35cm>


보이지 않는 바람을 어찌 그린단 말인가? 협재리에 모래가 덮인 밭, 저 밭담을 보면 구멍으로 지나가는 바람이 보인다. 일주도로에서 남쪽으로 몇십 미터 안쪽에 있는 조그만 밭이다. 밝게 페인트칠이 된 주택과 밭 사이에 돌담이라서 돌구멍들이 확연하게 드러난 상황이라 '옳거니!'하고 그렸다. 온통 초가집이 마을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 해수욕장 모래가 강력한 북서풍을 타고 날아드는 상황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밭! 오랜 세월 바닷바람과 맞서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획득한 지혜를 그리고자 한 것이다. 견고하게 빈틈없이 쌓은 것보다 구멍을 많이 나게 하여 바람이 통과하도록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을 저렇게 실질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아니한가! 문제는 그런 생각을 실질적 상황으로 만들어낼 기술력이다. 단기간에 배워서 쌓을 수 있는 돌담이 아니다. 기계적인 벽돌담장처럼 쌓는 것은 누구나 노동력만 투입하면 될 일이로되 저렇게 자연스러운 구멍이 숭숭 나도록 현무암을 가지고 최소한의 망치질로 쌓아갈 수 있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가 없다. 계시다 하더라도 저 바닷가 마을 지혜의 돌담을 쌓을 수 있는 분들은 나이가 많이 드셨으니 맥을 이어가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그렸다. 문화재의 관점에서 바라볼 일이다. 왕조시대의 성벽만을 문화재라고 할 것인가? 저기 민중의 지혜가 쌓아놓은 밭담은 정신문화유산이다. 보존하고 계승하여 나갈 충분한 이유와 인생살이에 귀감이 될 메시지가 분명하기에.



눈부신 바다를 위하여
<수채화 79cm×35cm>


이 섬의 북쪽 지역에서는 쉽게 이런 풍광을 구경 할 수가 없다. 해를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기 때문에 윤슬을 구경하는 것은 일출이나 일몰 시간 이외에는 만날 수가 없다. 하지만 협재포구라고 하는 공간이 제공하는 놀라움이 그러한 공간적 요인을 일거에 날려버린다. 포구 방파제와 울창한 숲 사이에 끼어있는 모래사장과 바다. 1초도 쉬지 않는 바다 표면을, 그것도 태양광선이 직접적으로 반사하는 바다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광도 밝기를 상대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백지보다 더 밝은 것을 어찌 백지에 그린단 말인가? 협재리가 보유한 소중한 가치 중에 하나를 이렇게라도 표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 모래사장에서 에메랄드 빛 바다를 만끽하는 것도 소중한 가치이지만 숲과 모래 바다를 한꺼번에 향유할 수 있는 이 포구의 시각적 자산가치는 한라산 북쪽 지역에서 이 곳이 유일하기에 큰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한 화면에 담을 수 없어서 안타깝게 생각한 위치가 협재포구. 여기에서 발견하는 놀라운 공간감은 의미가 엄청나다. 빛의 환타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넓고 시원한 장소를 통하여 '힐링공화국'이라도 선포하고 싶은 여기. 바닷바람이라도 시원하게 부는 날이면 가슴에 쌓였던 낡은 생각, 버려야 할 것들은 모두 씻어내는 마력을 가진 곳이다. 숲과 바다가 모래사장을 사이에 두고 만나면 눈부심이 더욱 찬란하다는 것을 면적대비 속에서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더 밝게 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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