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요즘 아이들이 태블릿을 잘 다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놀랍지 않다. 이제는 초등학생도 아닌 어린 아이들도 스마트 기기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시대다. 하지만 이렇게 디지털 기술이 일상화된 오늘날, 과연 우리는 아이들에게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 호주 같은 나라들은 이미 영유아의 디지털 기술 활용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명확한 기준 없이 부모와 교사들이 각자 알아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아이들에게 무조건 디지털을 멀리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얼마나,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이다.
디지털 기술은 영유아 발달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놀이형 디지털 콘텐츠가 아이들의 언어 발달과 창의적 사고를 촉진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이가 직접 화면을 터치하거나 움직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교육용 애플리케이션은 부모가 활용하기에 적합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이런 측면에서 디지털 기술은 올바르게 활용된다면 강력한 교육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사용은 그 반대다. 장시간 스마트 기기에 노출된 아이들은 시력 저하와 수면 장애를 겪을 위험이 높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디지털 기술이 놀이와 상호작용을 대체하면서, 아이들의 사회적 발달과 감정 조절 능력이 저해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신체 활동 시간이 부족한 현대 아이들에게 스마트 기기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
이런 문제에 대해 미국과 호주의 접근 방식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미국소아과학회(AAP)는 단순히 화면을 보는 것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상호작용형 콘텐츠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부모와 함께 디지털 활동을 진행한 후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방식은 기술이 단순한 소비가 아닌 창의적 학습으로 이어지게 한다. 호주는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를 창의적 도구로 활용하도록 놀이형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한다. 단순히 정보를 주입하는 대신 아이들이 스스로 탐구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디지털 콘텐츠가 넘쳐나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활용할 기준은 부족하다. 예를 들어, 특정 연령에서 어떤 콘텐츠가 적합한지, 부모와 교사는 어떻게 기술 활용을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모호하다. 단순히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실질적인 대책이 되기 어렵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도구다. 하지만 그것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열쇠가 될 수도,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미국, 호주의 사례를 참고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적합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아이들이 기술을 활용해 세상과 더 잘 연결되고, 자신의 가능성을 더 크게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과제가 아닐까. <김봉희 전 제주한라대 사회복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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