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삶이 아름답다고 현실이 그렇기만 할까. 뭐 하나 나아지는 거 없다고 압도될 때, 현실은 출구 없이 처절해진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기에 다시 일어서는 모습들이 시적 언어로 꺼내졌다. 재치 있고, 솔직하고, 묵직하다.
l 고선경의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열림원이 시인선 시리즈 '시-LIM 시인선'의 첫 번째로 펴낸 고선경 시인의 시집이다. 거리 위 '문학 파이터' 같이 씩씩하고 유쾌한 언어를 구사하는 시인은 개그 본능을 더하며 시라는 장르에 새로운 펀치를 날린다.
월급도 못 주는 회사, 대기업에 다니는 중학생 동창, 애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고시원 방 등등 그의 시는 도시의 청년들이 맞닥뜨린 현실에 있다. 이는 곧 시인의 오늘이기도 하지만, 그저 주저앉지는 않는다. 속시원히 소리치기도, 작은 위안을 되새기기도 한다. 그런 시적 주체에 향하는 동질감이 '우리의 이야기'를 긍정하게 한다.
시인에겐 "모르면서 안다고 말하는" 것도 "다 마음"이다. 이는 함께 살아 있기에 나눌 수 있었던 기쁨과 슬픔을 긍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살아서 나눠 가진 아름다움"을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에 담으면서다.
출판사는 서평에서 "'끝낼 인생'이 '끝내주는 인생'으로 바뀌기까지 '나'의 곁에는 수많은 '너희'가, '우리'가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며 "이 시집은 시인이 독자에게 건네는 한 알의 고백이자 축하, 행운의 부적"이라고 했다. 시집은 모두 4부로 50여 편의 시를 담고 있다. 176면. 1만2000원.
l 장석남의 '내가 사랑한 거짓말'
장석남 시인의 신작 시집이자 아홉 번째 시집이다. 2025년 창비시선의 출발을 알리는 첫 번째 시집으로 출간됐다. 최원식 문학평론가의 해설처럼 "오랜 정진을 통해 도달한 시경(詩境)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원숙함"이 담긴 70여 편의 시를 엮었다.
시인은 탁월한 언어 감각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서정의 신세계를 펼쳐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서정시가 서정시일 수 만은 없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감상이 날카로이 존재한다. "서정시를 쓰십니까? / 아니요 벼락을 씁니다 / (중략) / 벼락 맞을 짓을 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 벼락에 고하는 글을 씁니다" (시 '서정시를 쓰십니까?' 중)
자연과 교감하는 아름다운 서정의 풍경들을 건너다보면 날선 현실 인식과 풍자가 돋보이는 '정치시'도 만나게 된다. 시인은 "나는 법이에요 / (중략) / 나는 만인 앞에 평등해요 헤헤 / 음흉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죠 / 원칙이 있지만 아주 가끔만 필요하죠"('법의 자서전')라거나 "산송장들을 만드느라 / 관청의 서류마다 죄가 난무"('서울, 2023, 봄')하다고 작심하듯 읊는다. 148면. 1만2000원. 김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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