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어른 김장하
삶의 격
  • 입력 : 2025. 04.21(월) 02:0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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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

[한라일보] 어느새 마흔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몸은 부쩍 낡은 기색을 드러내는데 그럴 때마다 나이 탓을 하곤 한다. 젊음이 지나가고 있는 몸의 징표들을 눈으로 확인하며 애써 감추고 보완하려고 한다. 딱히 원망할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니 무력감이 들고 남은 인생의 활력은 애써도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부터 주저하곤 한다. 젊음이 상대적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서,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에 취하는 것으로 유예되는 것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이미 성인이 된 지 20년도 더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도 갈팡질팡 하고 있다. 명확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을 보면 어른 같다 생각하며 놀랍기도 하고 여전히 꿈 꾸는 이들을 보면 아이 같은 그 성정이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의아하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향하는 곳은 당연하고 한심하게도 통장 잔고에 찍힌 숫자들이다. 안정된 경제력을 갖춘 삶이 노후를 보장한다는 확신의 말들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가시지 않는 체증 같은 것이 있다. 삼켜지지 않는 질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른 김장하]는 2022년 제작된 TV 다큐멘터리의 영화 버전으로 지난 2023년 개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 선고를 한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 대행이 '김장하 장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TV버전의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OTT채널의 시청 순위가 급등했고 극장에서는 재개봉을 통해 관객들과 다시 만나고 있는 것이다.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삼키며 2024년 연말부터 지금까지를 보내고 있는 많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기꺼이 한 어른의 관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른 김장하]는 연출적으로 담백하기 그지 없는 다큐멘터리다. 평생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인물을 추적하는 이 이야기는 그 인물의 삶이 차근차근 넓혀간 나이테 속의 사람들을 통해 어른 김장하의 시간들을 펼쳐 놓는다. '김장하는 어떻게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까'에 대한 호기심과 추측과 의문과 걱정들에 대해, 그토록 스스로를 드러내기 꺼려했던 인물이 내놓는 답은 너무도 원형적인 것이어서 보는 내내 우문현답의 시간을 대리 체험하는 기분이 들게 느끼는 작품이기도 하다.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경남 사천에서 한약방을 열었던 그는 무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약재를 팔아 번 돈으로 많은 이들의 삶과 꿈을 지원한 이다. 가난으로 학업의 꿈을 잇기 어렵던 학생들을 도왔고 교육, 언론, 문화, 예술, 인권 등 세상을 더 이롭게 하고자 하는 곳곳의 싹들에 아낌 없는 희망을 건넸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었다'고 말한 그는 한약방의 수익금들로 긴 시간 세상을 위해 돈과 시간과 마음을 쓴 이다. 작품을 보기 전에는 그가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에 이어 돈을 불린 재주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세상의 얕은 의심들과 무수한 결과들이 보여준 것처럼 '명예를 위한 빌드 업'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에 동조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저 놀라울 정도로 성실한 직업인이었고 자신이 비교적 깨끗하게 살아왔다는 것이 유일한 힘이 된다고 말하는 이였으며 그 어떤 자리에도 오르기 위해 네트워킹을 한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에 훌륭한 이들은 많지만 김장하는 드문 어른이었다.

많은 이들이 인플루언서를 꿈 꾸고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을 갖는 시대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하고 사회적 관계 안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기를 바라는 브랜딩의 시대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탐색하며 취향을 무기로 쓰기도 하고 소비의 행태로 타인의 선망을 사기도 한다. 그런데 김장하는 어떤 직함이나 직위가 없이 그저 어른이 되는 것을 택한 이다. 자신의 인생을 세상의 양지를 만드는 데 온전히 소비하면서 말이다. 가진 것이 없어서 마음마저 가난해진다고 느끼던 나에게 그는 단 한 번의 호통도 없이 무언가 다른 것을 배우고 싶게 만들었다. 그가 인생 내내 평등함의 가치를, 보통의 힘을 믿었던 것처럼 나 또한 남은 삶에서 언제 희미해 졌는지 모를 그 단정한 옳음과 선명한 바름에 대해 찾고 싶어졌다. 그것들이 다른 어딘가에서 구해와야 하는 것이 아닌 내 안에 있음을 믿는다. [어른 김장하]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장하는 어느새 또 다른 어른이 된 인생의 동료들의 방문에 환하게 웃는다. 인풋과 아웃풋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숏폼의 재치로는 완성할 수 없는 '롱폼의 품격'이 거기에 있었다. 삶이 일궈낸 것들로 자연스럽게 만개한 꽃밭의 향기가 깨끗하게 진동했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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