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극장가에 신작이 없다는 말이 들려온 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팬데믹 직격탄을 맞은 국내 극장가는 OTT의 공격적 착륙까지 이어지며 그야말로 관객 가뭄의 시기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상반기에는 파죽지세의 오컬트 붐을 일으킨 '파묘'가 10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하며 깜짝 흥행에 성공했고 국내 유일의 흥행 시리즈물이라 할 수 있는 '범죄도시 4' 또한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무려 2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익빈 부익부는 가속화되어 한국영화시장의 부활을 논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들이 줄을 이었다. 4월이 절반쯤 지나간 2025년의 상황은 어떠할까. 올해 최고의 흥행작은 300만 관객을 가까스로 동원한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이다. 이 작품은 한국을 대표하는 봉준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지만 미국 워너 브라더스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미국 영화다. '미키17' 외에 2025년 개봉한 한국영화 중 중박이라 할 만할 20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전무하다.
작금의 극장가는 말 그대로 텅텅 빈 채 무대 인사와 GV등의 이벤트성 상영에 관객 동원을 기대하는 추세다. 이는 어쩔 수 없이 스타의 팬덤과 적극적인 코어 관객층의 결집에 의존하는 일로 향후 입소문 등 홍보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흥행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는 일이다. 또한 모든 작품이 무대 인사나 GV를 통해 관객들과의 만남을 만들 수도 없다. 영화가 아닌 콘서트 실황 상영 등의 '극장 이벤트'는 점점 더 스크린을 활용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고 그 여파로 특별관은 높은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걸맞는 작품을 만났을 때는 화력을 만들어낸다. 이제 전통적인 극장 영화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는 걸까. 관객은 극장에서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만족감을 얻기에는 너무 다채로운 욕망을 지닌 이들이 된 것일까. 영화와 관계된 모든 이들의 고민과 시름이 동시에 깊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발 빠른 관객들이 영화를 '먼저' 보는 곳은 개봉관이 아니다. 정보의 평등화가 이뤄진 지 오래인 시대, 해외의 화제작들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제작 중인 작품들에 대한 정보 또한 예비 관객들이 챙길 수 있는 시대다. 이러한 관객들은 규모의 크고 작음과 상관 없이 개봉 전 영화제를 통해 미개봉 신작들을 관람한다. 개봉이라는 시스템의 틀을 거치기 전의 작품과 조응하는 수고를 기꺼이 치르며 발견의 기쁨을 스스로 누리는 것이다. 개봉관 가뭄의 시대에 '작은 영화제'들의 흐름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일은 극장이라는 공간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신작 개봉이 부재한 2025년 4월에도 소규모 기획전들이 관객들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30주년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와 25주년을 맞은 극장 씨네큐브가 함께 선보이는 '광화문행 영화열차'에서는 미개봉 한국 장편 영화들을 GV 등의 부대 행사와 함께 만날 수 있고 지난 해50주년을 맞은 서울독립영화제는 서울 독립영화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를 시작으로 전국 독립영화전용관에서 단편, 장편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인디 피크닉 2025'를 선보인다. 4월 말에는 패션 매거진 마리끌레르가 주최하는 '제11회 마리끌레르 영화제'가 열린다. 단 3일 동안 치뤄지는 소규모 행사로도 볼 수 있지만 개봉작과 미개봉작을 망라하며 장편과 단편, 드라마 작품까지 국내 외의 작품들을 세심한 프로그래밍으로 집약시킨 알찬 행사다.
최근 SNS에는 심심치 않게 한국 영화 재미 없다, 한국 문학 재미 없다는 푸념들이 등장하곤 한다. 물론 일부 관객 혹은 독자들의 성급한 태도라고도 볼 수 있겠고 속 사정을 모르는 외부인이 던지는 김 빠지게 하는 소리로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목소리들은 또한 기대가 꺾여버린 이들의 간절한 원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어떤 소리들도 좀 더 새겨 들어야 한다. 다 알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낙심을 접고 각자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영화의 지도를 펴야 한다. 어떤 가이드가 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동시에 보수와 재건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파약해야 한다. 새로움의 발견이 그 심사숙고에서 나올 것이라 믿는다. 더 이상 눈 감고 네비게이션에 의지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님을, 각자와 모두의 수고로움과 사사로움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함을 깊이 자각하고 실행해야 할 때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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