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흐름(flow)에는 몸을 맡겨야 한다. 영화 '플로우'도 마찬가지다. 온전히 영화에 몸을 맡긴 채 그 흐름을 타야 한다. 우리는 영화 속의 의미를 찾는데 몰두하고 창작자의 의도를 맞히는 퀴즈쇼에 골몰할 필요가 없다. 갑작스러운 홍수를 만난 동물들처럼 우연히 만난 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면 된다. 세상의 모든 영화를 만나는 일이 결국 세계와의 우연한 맞닥뜨림이라는 것을 '플로우'는 다시 한 번 알려준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영화 '플로우'는 인간이 흔적으로만 남아있는 세상에서 홀로 집을 지키던 고양이가 갑작스러운 대홍수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영화는 고양이가 다른 동물들인 골든 리트리버, 카피바라,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를 만나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영화에는 인간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고 당연히 인간의 목소리 또한 없다. 오로지 동물들의 소리만 존재한다. 인간이 해석할 수 있는 대사가 없을 뿐, 동물들은 각자의 소리와 표정과 몸짓으로 그들의 대화를 이어간다.
장르 영화의 틀로 쉽게 묶이지 않은 '플로우'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장르로 변형될 수 있다. 홍수를 만난 동물들의 여정을 그린 재난 영화이자 로드 무비일 수도 있고,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동물들의 동행은 종교 영화로도 느껴진다. 한편 각기 다른 동물들이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연대를 그린다는 측면에서는 성장 영화로도, 공동체에 대한 긍정을 내포한다는 점에선 대안적 가족 영화로도 볼 수 있다. 지구온난화의 시기에 인간의 각성을 요구하는 진지한 환경 영화이기도 하다. 더불어 내게 '플로우'는 한 편의 시와도 같은 작품으로 남았다. 시를 읽는다는 행위가 즉각적 반응 이후 사고의 숙성 기간을 필요로 한다는 측면에서 '플로우'를 관람하고 감상하는 것에도 그 순차성이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플로우'의 여정은 단순하다. 홍수를 만난 세상에서 동물들이 배를 타고 생존을 이어가는 이야기. 다만 순간마다 선택해야 한다. 탑승과 동행, 우정 그리고 믿음을. 여정의 행간에는 이 감정적 교류가 이뤄지는 미묘한 교차점들이 있다. 대사나 내레이션으로 설명되지 않고 때로는 물 소리나 빗소리에 숨어 있다. 정확하게 골라내 계량화하거나 도식화할 수 없는 그 지점들을 향해 우리는 기꺼이 몸을 맡기고 여정의 동행자가 된다.
두 고양이 친구 옥희·덕희와 함께한 지가 벌써 10년 가까이 됐다. 신기하게도 둘은 나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내게 다가온다. 그 친구들이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나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옥희와 덕희도 나를 영원한 미스터리로 여길 지 모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때, 다가설 때, 함께 머무를 때 나는 언어가 할 수 없는 대화의 힘에 늘 감동받는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의 흐름이 우리의 대서사시가 아닐 리 없다. 침묵의 행간에 있었던 것 또한 사랑이 아닐 리 없을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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