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얀마 출신 로힝야족 알리씨가 지난 8일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양유리기자
[한라일보] “한국은 안전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점이 좋아요. 무엇보다 제가 꿈꾸던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어요.”
한라일보는 지난 8일 제주에 거주하는 유일한 소수민족 ‘로힝야’인 알리(가명·21)씨를 만나 그가 난민캠프를 떠나 제주까지 오게 된 여정을 들었다. 그는 지난해 여름 제주에 입도했으며 난민 인정 심사 절차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로힝야’를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이라고 했다. 로힝야는 미얀마(버마)의 라카인주에 주로 거주하며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이다.
이들은 종교와 인종의 차이, 그리고 영국 식민지배에서 비롯된 역사적 갈등으로 인해 미얀마에서 ‘이방인’으로서 탄압받아 왔다. 약 250만명으로 추정되는 로힝야인들은 방글라데시와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알리씨는 취재진에게 자신을 “제노사이드의 피해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미얀마 군부에 의해 살해되는 수많은 사람을 봤다”며 “나의 친형과 친척, 이웃, 마을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가 고향 미얀마를 떠난 것은 2017년 8월25일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인들을 대상으로 주택 방화, 살인 등 ‘소탕 작전’을 벌인 직후다. 이 사태로 약 67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70만명 이상이 방글라데시로 탈출했다.
당시 알리씨 가족도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의 난민캠프로 향했다. 하지만 100만명이 넘는 난민들이 체류하고 있는 캠프의 환경은 너무도 열악했고, 그의 누나는 그곳에서 질병을 얻어 끝내 숨졌다.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알리씨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는 “아플 때 치료 받고, 안전하게 보호받고,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꿈꾸며 캠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알리씨가 한국에 닿기까지의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족의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는 탓에 대다수의 로힝야인은 태어날 때부터 ‘무국적자’로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어떤 공식적인 서류나 여권이 허락되지 않는다.
결국 알리씨는 2년 반 동안 태국, 스리랑카, 인도, 방글라데시,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싱가포르 등을 거친 뒤에야 제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한국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는 “자유롭게 걷고, 말하고, 사람을 만나고, 인터넷을 하고 민주적이다. 심지어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 있다는 걸 목격했다”며 “이 모든 게 미얀마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알리씨는 한 종교 단체의 도움으로 임시 거주지를 얻어 생활 중이다. 명절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나에겐 매일이 휴일이고 혼자다. 명절이라고 특별할 게 없다”며 “가족은 늘 보고 싶지만 새해 첫날, 매년 마지막날, 라마단 기간에는 특히 그립다”고 답했다.
난민 인정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매 순간은 불안함의 연속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나를 반려한다면 나는 고국으로 돌아가 죽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내게 기회를 주길 바란다”며 “제주에서의 삶은 안전하지만 나는 외롭고 고립됐다. 이곳에서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막막하고 나와 같은 로힝야족이 없어 의지할 곳도 없다”고 한탄했다.
이처럼 알리씨에게 제주는 안식처이자 고립의 공간이다. 그는 긴 망명 생활을 떠올리며 지친 기색을 보이다가도 ‘희망’을 이야기했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곳에서 직업을 갖고 제 힘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제주와 로힝야는 ‘집단학살’이라는 비슷한 아픔을 가진 만큼 한국 사회에 로힝야인들의 투쟁을 알리고 저와 같은 어려움에 놓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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