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진의 하루를 시작하며] 지역 출판의 역할과 의미

[권희진의 하루를 시작하며] 지역 출판의 역할과 의미
  • 입력 : 2019. 01.09(수) 00:00
  • 김경섭 수습기자 kk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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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서울을 간 김에 교보문고에 들렀다. 한때 책을 만들던 사람에서 지금은 나름 서점 주인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서점에서 수많은 책에 둘러싸여 순수하게 독자로 돌아갔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행복과 만족감이 있다.

그래서 꼭 살 책이 없더라도 일부러 약속을 대형서점으로 잡는 편이었는데, 제주에는 이 정도 규모의 대형서점이 없다 보니 오프라인에서 책을 보고 고르는 일이 드물어졌다. 심지어 우리 서점에 새로 입고하는 책들도 대부분 직접 보지 못하고 주문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 혹시라도 내가 미처 모르는 좋은 책이 나왔는데 놓치는 게 있을까 봐 불안하기도 하다.

사실 이 불안감은 애초에 디어 마이 블루 서점이 출판을 위한 베이스캠프로 기획되었기에 더욱 증폭된 감이 없잖아 있다. 북카페도, 북스테이도 아닌 순수 서점이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수익 구조로 출판을 택한 것인데, 사람들이 눈앞에 보이는 책도 읽지 않는 시대에 보이지도 않는 책을 찾아서 읽게 만드는 건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어차피 신생 출판사의 마케팅이라는 건 한계가 있을 테니 대형서점에 입고해봐야 구석에 처박혀 있다 반품으로 돌아올 확률이 90퍼센트라면(100퍼센트일 수도 있다), 역시 실험적일지라도 유통은 제주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가져가는 게 나을 것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종수를 소개하는 지역 서점에서라면 어떤 책이든 의도적으로 좀 더 눈에 띄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주 내에서만 한정적으로 유통을 하면서도 경쟁력 있는 책이란 어떤 것인가. 당연히 제주에서 꼭 필요로 하면서 제주만의 가치와 색을 담아내는 책일 것이다. 굳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로컬의 미래'란 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계화의 망령에 사로잡혀 소비지상주의의 현실에 개인의 행복을 저당 잡히고 환경오염을 일삼으며 사는 오늘날이 더 나은 세상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걸 우리는 이미 다 안다. 그 안에서 지역의 가치를 알리고 지역의 생태계를 긍정적으로 재편성해가는 첫걸음으로서 출판은 분명 의미 있는 선봉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디어 마이 블루가 제주에서 출판을 하려는 목적이자 내가 지역 출판이 우선 지역에서 생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서점을 열고 이제 5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서점의 판매 기능을 강조하고 서비스에 집중한 이유는 일단 출판기획자 출신인 내 자신이 그동안 책을 만들기만 했지 필드에서 팔아본 적은 없으니 사람들한테 어떤 식으로 소개하고 팔 수 있을지에 대한 스스로의 경험이 필요했다. 또한 이곳에서만 파는 출판물을 만들었을 때 어느 정도 팔 수 있을지 가늠하는 기준도 필요했다. 무엇보다 콘텐츠를 모으고 사람을 찾기 위한 밑작업 공간으로서 서점은 출판사보다도 훨씬 매력적이고 접근성 면에서도 더 유리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책은, 특히나 책을 만든다는 건 결국 사람이 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궁극적으로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선 이곳 제주에서 같이 일할 사람들을 찾고 모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제주에 사는 제주를 아끼고 사랑하고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었고, 무엇이든 자기 이야기를 갖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아직 과정 중이지만 2019년은 디어 마이 블루가 제주에 필요한 콘텐츠들을 모으고 책으로 기록해나가는 첫 해가 될 것이다. 그 결과물이 지역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고 힘을 실어주길 부탁드린다.

<권희진 디어마이블루 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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