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17> 조각가 박금옥씨
  • 입력 : 2007. 08.16(목)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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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 알루미늄, 폐가전제품 등 갖은 재료를 이용해 다양한 주제를 탐색하고있는 조각가 박금옥씨가 나무 조각을 매만지고 있다. /사진=김명선기자

육중한 설치물에 별들이 유영
하나로 묶기 어려운 재료와 주제 탐색
"남과 똑같이 해선 남 이상 될 수 없어"


조각가 박금옥씨(38)는 '제주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작가'중 한 명이다. 제주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닿은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한라산, 바다, 돌담, 해녀 등이 그에겐 없다. "제주적인 것에 그리 관심이 없다." 작가는 그렇게 말한다. 대학원 시절, 지도 교수가 "향토적인 것에도 눈길을 돌려보라"고 넌지시 일렀을 정도다. 유년을 다른 지역에서 보낸 기억때문일 수도 있을 거라고 했지만, 그의 관심은 진작부터 다른 곳에 있었다.

1994년 첫 개인전은 '혼돈'이란 주제로, 2001년 두번째 개인전은 '꿈의 대지를 찾아서'란 이름으로 진행됐다. 하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과 똑같은 생명이 살고 있는 별이 어딘가에 있을까란 상상력을 풀어내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공상이 많다는 박씨도 한때 우주의 탄생 등을 다룬 서적을 열심히 찾아 읽던 때가 있었다. 두 차례의 개인전에 그같은 궁금증이 녹아있다.

사각의 틀안에 놓인 구겨진 물체를 통해 아무것도 빛나지 않았던 어둠속의 혼돈을 표현했다. 전시장의 바닥과 천장을 단숨에 이은 원기둥에는 어둠을 가르고 땅과 하늘이 질서를 갖춰가는 모습을 담았다. 한켠에선 별똥별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고, 밀짚모자 같은 미확인비행물체가 떠다닌다.

육중한 느낌의 이들 작품을 빚어내는 재료는 작가의 개성을 또한번 드러낸다. 무쇠, 알루미늄, 색색의 케이블선, 합판, 스펀지, 폐가전제품 등 여러 재료를 쓴다. 재료의 다양성만큼 작가가 그려내는 이야기도 한 줄에 꿰기 어렵다. 상자안에 갇힌 공룡알이 부화하고, 벽장에서 책 한귀퉁이가 비죽 나온다. 안료를 이용해 어상자안의 소금을 초록빛으로 만들거나, 철을 그물처럼 얽은 네모난 공간안에 선풍기 날개가 멈춰있다. 문득 떠오르는 심상을 이리저리 굴리는 동안 새로운 재료를 발견한다. 값비싼 재료를 마냥 쓸 수 없는 만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색다른 표현기법으로 탈바꿈시킨다. 그의 작업을 두고 곧잘 '튄다'는 얘기가 나온다.

"어디선가 '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란 글을 봤다. 그 말에 공감한다.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그래서인지 작업하는 게 남들에 비해 조금 느리고, 재료비도 만만찮게 들어간다."

이즈막에 그는 나무를 깎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갓난 아기 주먹만하게 나무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깎아 일일이 붙여놓은 작품이 눈에 띄었다. 작가는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영화 '트랜스포머'를 봤냐고 물으면서 "개별 작품으로 보면 머리에 쓰는 왕관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나중에 각각의 작업을 하나로 이으면 나무 로봇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작업장 한편에는 비슷한 방식으로 나무를 다듬어 견고한 성(城)을 만들어놓은 게 보였다. '마음에 벽을 쌓고 사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반영된 작품이란다.

작가는 손에 굳은 살이 박히고 몸이 괴로워야 비로소 작업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재료든 두려움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힘들게 치러진 두번째 개인전 이후 욕심을 버리게 되고,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되었다는 작가는 그런 마음으로 다음 전시를 기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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