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잇는사람들](6)한의사 진태준·상우 부자

[代를잇는사람들](6)한의사 진태준·상우 부자
"醫術은 마음을 씻어내는 일"
  • 입력 : 2008. 02.23(토) 00:00
  • 이현숙 기자 hslee@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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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인 아버지와 함께 10여년째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진태준·상우 부자가 활짝 웃고 있다. /사진=강희만기자 hmkang@hallailbo.co.kr

양·한방 진료 아버지 따라 같은 길 10여년
고운 뒷모습 남기기 위해 기념관 건립 계획


어린 시절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다. 열일곱살때 병원에서 조수로 일을 했던 그는 고학으로 한의사 자격과 의사자격을 모두 갖게 됐다. 세명의 아들을 둔 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들을 먼저 가슴에 묻었다. 의술을 펼치는 것이 꿈이었던 아들의 뜻을 잊지 않도록 의학도를 위한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막내 아들 상우씨(45)가 같은 길을 걷고 있어 믿음직스럽다. 머지않아 생을 마감할 것을 알고 있지만 '의술은 곧 인술'이라는 신념으로 한길을 걸어온 것에 후회는 없다. 진태준 한의사(83)의 '사연깊은 인생사'다.

제주시 삼도1동에 있는 진한의원을 찾아간 20일 진료실에는 책상 2개가 자리잡고 있었다. 한쪽은 진 원장이, 다른 한쪽에서는 상우씨가 환자를 맞고 있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의원의 주인장이 될 상우씨는 "반드시 한의사가 되겠다고 꿈꿨다기 보다는 늘 봐왔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길을 가게된 것"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아버지는 양·한방 진료를 다했던 도내 '유일무이'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모든 한의사들의 귀감이 되는 분이죠. 이것이 아들로서 버팀목이 되지만 동시에 큰 부담이기도 합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아버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가야죠."

제주북교 옆에 있던 한의원이 지금 위치로 옮겨온 것은 1994년. 상우씨가 제주로 내려오면서 부자는 새 둥지를 틀었다. 벌써 14년이 흘렀다.

선배 한의사로서 아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말은 뭘까. "난 곧장 한길을 걸어온 것 밖에 없어.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의사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지. 그래서 항상 병에 대해, 진단에 대해 너무 자신감을 갖지 말라고 얘기하지."

2년여전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잠시 중단된 장학사업은 아들이 이을 생각이다.

상우씨는 "힘든 의학도와 효부들을 선정해 지원했지만 요즘에는 의대나 한의대를 들어가는 학생은 대부분 형편이 좋은 편이잖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힘든 어린이를 후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계획입니다."

"나는 의사가 되어서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 다른 이들은 어떻게 평가할 지 모르지만 나는 만족해. 머지않아 두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겠지만 고운 뒷모습을 남겨주기 위해 정리를 잘 하고 싶어."

어느정도 얘기가 끝나자 진 원장이 기자를 건물 3층으로 안내했다. '동연자료실'이라고 이름붙여진 이곳은 진 원장이 한평생 의술을 펼치면서 사용했던 것들과 부모님과 아들의 유품이 '이름표'를 달고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 의학사를 한눈에 볼수 있는 박물관 같았다. 60년을 넘긴 왕진가방, 거즈통, 혈압계, 한약을 자르는 기계 등. 아버지의 마지막 희망은 아들과 함께 소중한 것들을 한자리에 모은 기념관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언젠가 그 기념관 한켠에서 부자 한의사를 추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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