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사랑회 시 낭송회
2004년 이래 5년째 시행
쉰한번 운영 문화에 윤기
중학교때 국어 선생님은 이런 분이셨다. 교과서에 나온 시를 큰소리로 따라 읽으라고 시켰다. 그 리듬이 독특해 종종 친구들끼리 키득거렸다. 교실이 떠나가라 읽었던 그 시들이 잊혀지긴 했지만 유별났다.
얼마전 옛 기억을 깨우듯 시낭송 음성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지난 6일 저녁 제주시 산지천에 세워진 중국피난선 '해상호'에서 열린 제주시사랑회의 정기 시낭송 행사장을 찾았다. 이 단체는 매달 한 차례 시낭송을 해왔는데, 그때가 꼭 5년째 되는 날이었다. 이들은 2004년 2월 6일 해상호에 시의 닻을 올린 이래 5년동안 51회에 걸쳐 쉬지 않고 노를 저어왔다.
'나무는 희망에 대하여 과장하지 않았지만/ 절망을 만나서도 작아지지 않았다/ 묵묵히 그것들의 한복판을 지나왔을 뿐이다/ 겨울에 대하여/ 또는 봄이 오는 소리에 대하여/ 호들갑 떨지 않았다'
도종환의 시 '산벚나무'가 산지천 물빛에 어른거렸다. 시 한편의 낭송이 끝나고 나면 다시 또다른 시의 물결이 밀려들었다. 시 낭송가들은 공연을 하듯 정성스럽게 옷을 차려입고 무대에 올랐다. 한 편의 시를 낭송하는 일은 한 편의 1인극을 보는 듯 했다.
낭송가들만 시를 실어나른게 아니었다. 관객도 주인공이 됐다. 몇몇 청중이 제주시사랑회가 고른 '관객과 함께하는 시'를 읽어나갔다. 훈련된 낭송가들과는 또다른 빛깔을 그려냈다.
매해 제주지역에서 시집이 쏟아지고 등단 시인이 나오지만 그처럼 무수한 시가 얼마나 독자의 가슴으로 밀려들었는지 모른다. 제주시사랑회의 정기 시낭송 행사는 그런 현실에서 시와 관객을 이어주고 있다.
이날 처음 시낭송 행사를 찾았다는 어느 시인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제주섬의 자그만 공간에서 나즈막한 목소리로 한달에 한번씩 시를 노래해온 이들을 통해 지역문화의 희망을 봤다는 거다.
그들은 시가 좋았다. 남성 1명을 제외하곤 30~40대 기혼여성인 26명의 회원들은 그 힘으로 정기 시낭송회를 꾸린다. 3월엔 봄을 여는 시낭송회가 열린다. 올해부터는 관객과 함께 하는 시 낭송 시간을 늘려나갈 예정이다.
제주에는 문화를 빚어내는 수많은 단체가 있다. 이들중에 관객과 교감을 이루며 문화향유의 외연을 넓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공연이나 전시가 줄을 잇고 있지만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는 일도 드물다.
2월 시낭송회를 찾은 청중들은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이해인의 '나를 위로하는 날')라고 노래했다. 세상에 아무런 쓸모없을 것 같은 문학이 우리를 다독이는 때가 있다. 이름난 예술가도 아닌 이들이 매월 첫째주 금요일 저녁마다 산지천에 띄우는 시 한 편이 그런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