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그들의 사랑에 방해자가 없다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그들의 사랑에 방해자가 없다
  • 입력 : 2009. 06.02(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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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오페라 '백록담' 공연
깁고 보태 완성도 높이지만
극적 재미는 여전히 과제로


창작오페라 '백록담'은 제주 음악사에서 남다른 경력을 그려가고 있다. 2002년 첫 선을 보인 이래 2003년, 2007년 잇달아 공연됐다. 이 과정에서 '백록담'을 깁고 보태는 작업이 이어졌다. 막이 내리면 여러 평자나 관계자들에 의해 '아니다, 기다'란 관극평이 나왔고 그것은 제주에서 만들고 초연된 오페라 '백록담'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동력이 되었다.

지난달 29~31일 문예회관에 또한번 '백록담'이 올랐다. 제주돌문화공원 야외에서 공연된지 2년만의 일이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제주 개최를 기념한 무대였다.

2009년 '백록담'은 준비 과정이 종전과 달랐다. 이전까지는 제주시가 제작을 맡아 제주시립예술단(교향악단·합창단)이 주축을 이뤘다면 이번에는 제주도립예술단 통합에 따라 도립교향악단·제주합창단·서귀포합창단·도립무용단이 한데 참여해 출연진이 막강해졌다. 음악을 보강했고 새로운 연출자가 투입됐다.

마지막날 공연장을 찾았다. 군더더기를 걷어낸 무대였다. 올렛길이 연상되기도 하고, 한라산을 오르는 길 같기도 한 회전식 원형무대 하나로 2막 9장에 이르는 장면을 이어갔다. 출연진들의 움직임이 일렁거렸던 무대 한켠 유리벽 같은 설치물은 인물의 내면 세계를 비추는 듯 했고 공간을 확장하는 효과를 냈다.

'백록담'에 참여했던 경험을 가진 성악가들은 오페라에 윤기를 줬다. 31일 공연때만 해도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구슬이 역의 소프라노 김유섬, 문길상을 맡은 테너 이현씨 등이 안정적으로 무대를 이끌었다. 구슬이 역으로 더블캐스팅된 소프라노 현선경씨도 그런 경우다.

제주시는 이 작품을 '문화관광상품'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다듬어야 할 대목이 눈에 띄었다. 유독 '마(ㅁ+아래·)심'(마음)이란 말이 자주 나온 제주어 노랫말은 종종 부자연스러운 단어 선택이 거슬렸다. 제주섬 백성들은 한결같이 갈옷을 입었는데 짙은 갈색의 쌍둥이 같은 의복은 등장인물의 생명력을 떨어뜨렸다. 군무는 비좁은 무대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효과를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

더불어 '백록담'의 하이라이트가 밋밋하게 진행되는 점은 아쉽다. 구슬이와 문길상이 신분을 뛰어넘어 사랑을 일군다는 대중적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은 안이해보였다. 두 사람이 갖은 고난을 딛고 백록담으로 향하며 마침내 그곳에서 희망에 찬 미래를 그리는 장면이 설득력 있게 전개되어야 하지 않을까.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인물과 사건, 백록담으로 피신했을 때의 긴장감이 밀도있게 그려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작품의 재미와 감동을 결정짓는다.

무엇을 더하고 뺄 것인지는 '백록담'이 공연되는 한 지속될 궁리다. 롤모델이 있는 서양 오페라와 다른 '토종 오페라'의 고민이기도 하다. '백록담'의 아리아가 청중의 마음에 잔잔한 무늬를 그려내고 오페라에 등장하던 기악곡이 널리 연주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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