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세계유산을 빛낸 사람들](10)-③제주학 연구 창시

[제주 세계유산을 빛낸 사람들](10)-③제주학 연구 창시
제2부 석주명과 제주
석주명 '제주학' 제주大에 강좌 개설 필요성 제기
  • 입력 : 2009. 06.10(수)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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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천과학관은 지난 4월 석주명의 유품 및 관련 사료를 과학관 내 명예의 전당 기획전시실에 전시했다. 석주명 특별전에는 그의 유품과 관련 사료를 비롯 한국나비 전종 표본 등이 망라됐다. 전시실에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석주명의 탁상 다이어리, 미발표 친필 논문, 나비 채집 장비 등 50여점과 그에 의해 아름다운 한글 이름을 갖게 된 한국산 나비 250여종이 선보였다. /사진=한라일보DB

'나비'연구 머물지 않고 문화인류분야까지 섭렵
"회고의 대상 아닌 계승·기념사업으로 확대돼야"
연구 거점 아열대농업연구소 최대한 활용 시급


석주명은 1942년 송도중학을 그만두고 경성제국대학 미생물학교실에 들어갔다가 1943년 제주도 근무를 자원했다. 제주도에서는 25개월 동안 제주방언을 채집하고 갖가지 인문·자연 과학분야를 연구, 이것을 6권의 제주도 총서로 묶어 1947년부터 출판했다.

한국나비학회 김성수 부회장은 "석주명 선생은 1945년까지 2년여간 제주에 머물면서 나비는 물론 제주도 자체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며 석주명을 '제주도 박사'라고 평가했다.

석주명 연구자인 문만용 전북대 연구교수는 석주명의 연구세계를 '조선적 생물학'이라는 독특한 과학관으로 접근, 눈길을 끈다. 실제 석주명은 1947년 '국학과 생물학'이란 글에서 "국학이라면 한문책이나 보고 읽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국학이란 인문과학에 국한될 것이 아니고 자연과학에도 관련되는 것으로, 더욱이 생물학 방면에서는 깊은 관련성을 발견할 수 있다"며 '조선적 생물학'과 '조선 생물학'이라는 학문도 성립될 수 있다고 보았다. 과학에도 국적이 있다는 논리로서, 과학과 국가를 연결 지어 이해하려 했던 것이다.

문 교수는 "나비에 대한 역사와 말을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그의 생물학이 단순한 자연과학을 넘어 국학적 성격을 더욱 짙게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볼 때 그가 추구한 '조선적 생물학'의 계통이란 바로 국학이라는 큰 줄기에 연결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러한 측면은 그가 생물학과는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인문학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며 국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활동했던 사실과도 맥이 통한다.

일례로 제주방언에 대한 석주명의 관심이다. 석주명은 우리말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각 지역을 다니며 채집을 하는 동안 지방마다 독특한 양상을 나타내는 방언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결과로 여겨진다는 게 문 교수의 설명이다. 이러한 흥미가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본격적인 연구로 이어졌으며, 심지어 근무 기간을 1년 연장하면서까지 제주도의 방언을 조사·연구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가 발품을 팔아 남긴 '제주도 방언집'은 국어학계로부터도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각 지역마다 독특한 양상을 띠는 방언 이외에도 특정 지역의 민속, 흥미로운 향토사도 그의 관심사였다. 제주도 관계문헌집, 제주도 수필, 제주도 자료집, 제주도 생명조사서의 역작들도 이런 관심의 산물이었다. 석주명의 이런 관심은 당대 내로라하는 국학자들과 학문적으로 교우하면서 더욱 구체화됐다는게 학계의 평가다.

현용준 제주대 명예교수는 석주명 강연에서 "석주명 선생은 흔히 '나비박사'로 알려져 있지만, 제주도(濟州島)의 문화연구에 공헌한 바 크다"고 평가했다. 현 교수는 또 "인문사회과학을 하는 나로서는 석주명 선생을 제주도 방언과 민속을 처음으로 문화인류학적 견지에서 연구를 창시한 학자라고 본다"고 했다.

최낙진 제주대 교수(언론홍보학과)는 '석주명의 제주도총서의 출판학적 의미'에 대해 분석했다. 최 교수는 "석주명의 총서 기획과 출판은 우리나라 출판사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에 의해 특정 지역을 자연, 인문, 사회, 과학, 역사 부문 등을 망라한 총서 기획과 출판이 석주명 이전에는 시도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석주명의 제주도 총서 기획은 그 자체로 특이하고 경이로운 일로 받아들여진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석주명 선생은 학계는 물론이고 우리 제주도민들에게도 회고의 대상일 수만은 없다. 선생의 학문관과 연구방법, 그리고 제주도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고 계승하는 작업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석주명선생이 남긴 제주총서 등 제주학을 제주대학교 교양학부 정규 교과목으로 개설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했다.

석주명에 대한 학계의 이런 평가와 제언은 그를 기념하기 위한 논의가 학제적인 차원을 뛰어 넘어 정책으로 구체화시켜 나갈 때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석주명 기념사업은 그의 연구 공간이었던 서귀포시 토평동 소재 아열대농업연구소를 핵심공간으로 한다.

제주도문화재위원들과 학계에서는 아열대농업연구소 건물을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고 앞으로 활용까지 염두에 둔 기념관으로 격상시켜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열대농업연구소를 가칭 '석주명공원'으로 명명해, 서귀포의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앞으로 아얼대농업연구소 건물의 등록문화재 지정과 기념사업이 어떻게 정책으로 구체화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석주명의 제주도 총서]제주연구에 새 지평 '재발견'

총 6권 분량… 서귀포문화원 재발간

후학들에게도 귀중한 문헌자료 제공


평양이 고향인 석주명 선생과 제주의 첫 인연은 1936년 7~8월 곤충 채집차 제주를 찾아오면서 였다. 이후 석주명은 서귀포시 토평동에 있던 경성제대(현 서울대)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시험장(현 제주대 부속 아열대연구소)에 1943년 부임한 뒤 1945년까지 2년 1개월 동안 재임하면서 곤충뿐만 아니라 제주의 방언과 민속·향토사 연구 등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석주명 선생을 가리켜 진정한 '제주도학의 창시자'라고 칭송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귀포문화원이 2008년 12월 새롭게 발간한 석주명의 '제주학 연구 총서'(사진 왼쪽)와 제주학 연구의 기틀을 다진 석주명의 친필 원고. /사진=한라일보DB

1947년에 펴낸 '제주도방언집'을 시작으로 1949년의 '제주도생명조사서'와 '제주도관계문헌집', 그리고 그의 유고집인 '제주도 수필(1968)', '제주도곤충상(1971)', '제주도자료집(1971년)' 등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석주명 선생이 남긴 '제주도총서' 6권은 제주를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귀중한 문헌자료가 되고 있다. 그것은 제주의 재발견이며, 제주의 문화곳간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빛나는 업적으로 제주인과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석주명의 '제주학 연구 총서' 6권은 지난해 12월 새롭게 발간됐다. 석주명 기념사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가운데 그가 터를 잡았던 서귀포문화원이 엮어낸 것이다.

'제주도 방언집'은 석주명 자신이 직접 제주에 거주하면서 조사했다는데 의의가 있으며 제주의 남부방언과 북부방언을 비교했다. 또 경상도 방언, 전라도 방언 등 각도의 방언과 비교했으며 몽골어, 일본어, 중국 한족어, 말레이시아어, 필리핀어, 안남어 등 동남아시아의 여러 언어와 비교했다는 점에 의의가 크다.

'제주도의 생명조사서'는 1944년 2월부터 1945년 4월까지 1년 2개월에 걸쳐 9개면 16개리의 인구를 조사한 자료다. '제주도 문헌집'은 기존에 나온 제주도에 관한 단행본, 논문 등을 수집하여 서명, 편저자, 권 수 및 발행사, 발행연대 등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제주도 수필'은 짤막짤막한 기록들로 되어 있지만, 제주도의 역사, 지리, 인문, 민속 등 많은 견문을 들을 대로 기록하여 남긴 것이다. 크게 총론, 자연, 인문 등 3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주대 최낙진 교수는 "제주도 수필은 가히 제주도의 자연과 인문에 관한 수필식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제주도 곤충상'은 석주명의 제주도총서 6권 중 유일하게 자신의 전공분야를 정리해 놓은 책이다. 마지막에 발간된 '제주도자료집'은 1~5권에 들어가지 않은 기고 등 여러 자료들을 모은 것이다.

<후원 :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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