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29)'사랑의 전도사' 이정호씨

[이 사람이 사는 법](29)'사랑의 전도사' 이정호씨
"가정 꾸린 선원들 행복한 모습 기뻐"
  • 입력 : 2009. 08.08(토) 00:00
  • 김명선 기자 mskim@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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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서도 결혼 못하고 방황하는 선원들이 안타까워 중매에 나섰다는 이정호(사진 가운데)씨가 가정을 꾸린 선원 가족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김명선기자

헤프게 돈 쓰고 방황하는 선원들 중매
1994년부터 지금까지 17쌍 결혼 성사


추자면 대서항에는 조기잡이 배들로 가득했다. 이 배들은 휴어철임에도 그물 손질과 선박수리 등 출어 준비가 한창이었다. 선원들과 함께 선박수리를 하고 있는 이정호(56)씨를 만났다.

그는 1995년부터 17명의 선원들을 장가 보내 선원들 사이에서는 '사랑의 전도사'로 통한다.

이씨는 중학교를 졸업하며 선원생활을 시작했다. 제주와 서·남해 바다를 누볐던 이씨는 군대를 제대한 후 선장의 꿈을 안고 부산에 있는 고려원양에 입사, 다시 선원생활로 뛰어 들었다.

인력수출이 한창이던 1976년, 그도 3년 계약으로 대서양에 위치한 스페인의 라스팔마스 그랑카나리아군도에 있는 모르코 선적 어선의 선원으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일은 순탄하지 못했다. 그가 다니더 선사가 1년만에 문을 닫게 되었다. 직장에서 월급도 못받고 쫓겨나듯이 일을 그만둔 이씨는 고향의 가족 생각에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었다.

1983년까지 스페인과 리비아에서 어획물처리사로 일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의 권유로 10톤 크기의 목선을 구입, 문어 잡이에 나섰다.

1986년 그에게 또 한번의 시련이 찾아 왔다. 제주에서 고기를 팔고 추자도로 돌아오던 중 큰 파도에 배가 뒤집혀 침몰한 것. 다행히 아내와 선원들의 목숨은 건졌지만 전재산이나 다름 없는 배를 잃어버렸다. 크게 낙담하던 이씨는 다시 외국으로 일하러 나갈 생각을 했지만 주변 친척의 도움으로 다시 배를 구입해 추자도 특산품인 조기잡이에 나설수 있었다. 이 때부터 이씨의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처음 시작한 일이 선원들을 내 가족과 같이 대하는 것이었다. "당시 선원들은 돈을 헤프게 썼다. 술과 유흥비로 월급을 금세 날려버리기 일쑤였다. 안되겠다 싶어 선원들과 함께 머물며 하나하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됐다. 그런 모습을 지켜 보던중 생각해 낸 일이 선원들을 장가 보내는 일이었다. 마흔이 넘어서도 결혼도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중매에 나섰다"고 말했다.

1994년부터 그의 중매사업(?)은 시작 됐다. 쉬는날 술만 마시던 선원들이 가족이 생기면서부터 책임감 때문에 술을 줄였고, 귀가시간 또한 빨라졌다.

선원 9명을 국내 여성과 결혼 시킨 그는 국내여성들이 섬으로 시집오기를 꺼려하는 모습을 본 뒤로는 우리와 비슷한 유교사상을 가지고 있는 베트남 여성을 소개시켜 주고 있다. 현재 8명의 선원이 베트남 여성과 가정을 꾸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안정적인 가정 생활을 하게 된 선원들의 마음 가짐이 달라지면서 이씨의 배인 동원호의 어획량은 항상 추자도의 조기잡이 어선들 중 상위권에 들 정도다.

그는 "가족을 이룬 선원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된 것 같이 이 일을 멈추기 힘들다. 내가 추자도에서 살아가는 동안 어려운 이웃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이정호씨는 오는 14일부터 개최되는 '추자도 굴비축제'가 성공리에 열려 추자주민과 어민들의 소득 증대로 이어져 마을을 떠난 사람들이 다시 추자도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는게 새로운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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