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12](3)검은모래-②공천포 검은모래 해수욕장

[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12](3)검은모래-②공천포 검은모래 해수욕장
검게 반짝이던 그 많은 검은모래 어디로 갔나
  • 입력 : 2010. 08.02(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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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찾은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2리 공천포 해수욕장. 80년대 이후 한층 심각해진 모래유실로 이대로가면 조만간 모래바닥이 완전히 드러날 처지에 놓여있다. /사진=강경민기자

'흑모살뜸'으로 유명세 떨치던 남원읍 신례2리 검은모래 바닷가
머잖아 바닥 드러날 위기의식에 지자체 대책 요구했지만 무관심


"외지에서 더 많이 왔지. 몸에 좋다고 하니까 그런 거주게. 혈액순환에 참 좋다고. 근디 그 일이 벌써 30년도 넘어서."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2리복지회관에서 마주친 강병자(71·신례2리)씨는 공천포 해수욕장의 모래찜질에 얽힌 이야기를 그렇게 풀어냈다. 공천포는 신례2리를 일컫는 이름이다. 검은 모래로 유명했던 공천포지만 지금은 그 얼굴이 바뀌었다. 모래찜질을 하기 위해 각지에서 몰려들던 사연은 옛 말이 되어버렸다.

▶영등물과 더불어 한때 지역명물

마을지 '공천포지'(1994)에 따르면 설촌 당시 마을과 해안 사이엔 햇볕이 강한 바닷가에서 자라는 '숨베기낭'('순비기나무'의 제주어)이 무성했다. 숨베기낭은 파도와 모래가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줬다. 마을 사람들은 숨베기낭 사이로 길을 만들고 다녔다. 그러다 1930년쯤 가구수가 20여호로 불어나면서 도로 정비의 필요성이 인식됐다. 마을 '내깍'에서 '설코지'까지 1㎞ 구간의 숨베기낭을 제거하고 필요한 곳에 담을 쌓아 폭 2~3m의 해안도로가 생겨난다.

공천포 검은모래의 수난은 해방 이후 본격화된다. 시멘트 사용이 늘어나면서 공공기관이나 각 가정에서 검은모래를 마음대로 퍼가거나 마을에서 대량 판매한 일이 있었다. 모래 반출을 금지하고 높은 파도를 막을 생각으로 60년대엔 호안(護岸) 공사를 했고, 1975~77년엔 기존의 호안 외부로 축대를 쌓아올려 해안도로를 확대 포장했다. 1986년에는 선박 출입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포구의 남쪽 성담에서 바다쪽으로 폭 2m, 높이 2.5m, 길이 55m의 방파제를 쌓았다. 마을의 지형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갔지만 검은모래밭은 차츰 옛 모습을 잃어갔다.

▲신례2리 마을지 '공천포지'에 실린 공천포해수욕장 모습. 공천포 바닷가는 피서객으로 북적였던 곳이다.

신례2리에서 보관중인 사진 자료엔 여름철 검은모래밭을 배경으로 마을 안팎의 피서객들이 꽉 들어찬 모습이 보인다. 공천포 검은모래 찜질은 해안가에서 솟아나는 영등물과 더불어 이 지역의 명물이었다. 영등물은 영등할망이 들어왔다가 나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뼛속까지 시린 영등물을 맞고 난 뒤 새까맣게 반짝이는 뜨거운 모래밭으로 들어가 모래찜질을 하면 신경통과 잔병들이 낫는다고 했다. 특히 백중날이 되면 공천포 해안은 모래찜질을 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국문화원연합회제주도지회가 펴낸 '남원읍지'(2008)에 소개된 '공천포 흑모살뜸'의 한 대목을 보자. "뜸을 뜨면 신경통과 관절에 좋다고 하여 여름이 되면 농사를 짓다가 숨 돌릴 틈만 생기면 모살뜸을 하러 공천포로 향했다. 모래구덩이를 파서 몸을 뉘여 얼굴만 남기고 모래를 덮는다. 그리고 수건이나 패랭이, 우산으로 얼굴에 햇볕을 가려 누워있으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그 많던 흑모살이 어디로 갔는지 없어져 버려 아쉬움이 많다."

▶해안가 30여가구 이전 계획 등 검토

공천포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신례2리 새마을지도자 오충식씨는 "마을사람 열이면 열 모두 검은모래가 유실되는 것을 두고 너무나 안타까워 한다"고 말했다. 마을에서는 몇년 안에 바닥을 드러낼 것 같은 모래 유실에 대처하기 위해 그동안 여러 노력을 벌여왔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2004년 남제주군에서 실시한 '해수욕장 모래유실 원인규명 조사 용역 보고서'를 토대로 후속 작업을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김기홍 전 신례2리장은 "지난해 제주도에 공천포 해수욕장 인근 30여가구를 이전하는 방안 등을 염두에 두고 검은모래 복원을 위한 용역을 실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행정 당국에서 검은모래와 같은 소중한 자원이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대책 마련에 나섰으면 한다"고 밝혔다.

방파제 건설·해안도로로 침식
공천포 해안 모래유실 원인규명 용역 결과
수중구조물 설치·완경사 호안 등 공법 제시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에 따르면, 공천포 해수욕장의 검은 모래는 현무암질 용암의 부산물이다. 검은모래는 큰 하천인 신례천을 통해 한라산 고지대에서부터 운반되어 왔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검은 모래가 유실되는 것과 관련 해변을 끼고 이루어진 마을 안길 확장과 포구 건설을 지목했다.

2004년 남제주군에서 발간한 '해수욕장 모래유실 원인규명 조사 용역 보고서'는 공천포 검은모래의 유실 원인을 어디에 두고 있을까. 보고서 역시 앞선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용역은 모래유실이 진행중인 하모, 화순, 신양해수욕장, 공천포 해안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기존 자료조사, 해양조사, 수치모형실험 등을 통해 모래가 깔려있는 바닷가의 땅이 유실되는 원인을 분석해냈다.

▲모래유실은 남원읍 신례2리 공천포 해수욕장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공천포처럼 검은모래로 유명한 제주시 삼양검은모래해변에 설치된 모래포집기.

공천포 해안은 1980년대 이후 급격하게 모래가 유실돼 최근엔 짧은 자갈 해안만 남아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도별 해안선 분석결과 1979년의 해안선에 비해 1985년, 1990년, 1995년으로 갈수록 점차 해변폭이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에는 1995년의 해변폭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1995년에 해변이 모두 사라져 배후의 직립석축에 의해 해안선이 유지되고 있는 것에 기인한 현상으로 해안선이 평형상태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용역팀은 공천포 해안의 침식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판단되는 요인으로 공천포 해안 서측에 위치한 소규모 어항인 신례항의 방파제 건설을 꼽았다. 또한 1970년대에 축조된 직립석축에 의한 해안도로의 건설을 들었다. 보고서는 "공천포 해안의 침식 원인은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이 보고서는 공천포 해안의 모래 유실 대책공법과 관련 "호안에 의해 발생되는 반사파랑에 의한 영향이 탁월하게 미치는 것으로 판단되어진다"면서 파도의 힘을 줄이기 위해 해안에 수중구조물을 설치하는 '잠제'등의 공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또한 모래를 채우는 양빈 공법과 더불어 크고 작은 파도를 저감시키기 위해 기존의 호안을 완경사 호안으로 구조변경하는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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