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십경' 중 '사봉낙조'로 유명한 사라봉은 하루 2000~3000명이 드나드는 등 제주시민들에게 휴식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사라봉 주변에는 '산지등대' 등 제주의 역사와 문화가 새겨져 있다. /사진=강희만기자
산과 바다·도심 한눈에 조망
사람사는 이야기꽃도 즐거움
주변엔 사연 있는 공간 많아
키 큰 소나무 사이로 푸른빛 바다가 눈에 걸렸다. 정상 쪽으로 조금 더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가로로 쭉 펼쳐졌다. 가슴이 탁 트였다. 뿐인가. 방향을 돌리니 살짝 안개가 끼어있는 듯한 한라산과 오름이 보인다. 도심의 삐죽빼죽한 건물들은 모형처럼 축소돼 눈에 들어온다.
서울에 남산이 있다면, 제주엔 사라봉이 있다. 하루 2000~3000명이 드나드는 곳이다. 번잡한 시가지에서 2㎞쯤 이동하면 다다르는 사라봉은 해가 떨어지며 바다를 물들이는 풍경이 유독 아름다운 '사봉낙조'로 유명하다.
▲양성언 도교육감
양성언(69) 제주도교육감은 영주십경의 하나로 꼽히는 사라봉을 추천했다. 사라봉을 즐겨 찾은 햇수가 3년 남짓이지만 제주의 산과 바다, 사람사는 동네가 한 눈에 담기는 그곳에서 양 교육감은 조용한 가르침을 만난다.
사라봉 가는 길엔 사연있는 공간들이 많다. 조선시대 굶주린 제주 백성을 구한 김만덕을 기리는 기념관, 항일에 목숨 바쳤던 선인들을 기억하는 의병항쟁기념탑, 제주시무형문화재전수회관, 제주항의 관문등대인 산지등대 등엔 제주의 역사와 문화가 새겨져있다.
새벽 5시~5시30분쯤 오름 입구에 도착할 때가 많은 양 교육감은 이 공간들을 새기며 오름을 오른다. 오름 전체가 제주시민을 위한 사라봉공원으로 조성돼 걷는 데 불편함이 없다.
"이른 시간인데도 운동 삼아 사라봉에 나온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부지런히 사는 그 분들을 보면서 내 자신의 게으름을 돌아보게 됩니다. 쉼터에 앉아 교육계에 대한 이런저런 바람 등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일도 좋아합니다."
일찍이 민선 교육감 시대를 열었던 양 교육감은 전국에서 드문 3선 교육감이다. 지난 7월 세번째 취임식을 가진 그는 "이번이 마지막 임기"라는 말을 종종 한다. 그만큼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한 강박도 커보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와 함께 오르는 사라봉에서 양 교육감은 여러 생각을 가다듬는다.
공교롭게도 오름 정상 '망양정' 부근엔 '대한민국어린이헌장'빗돌이 세워졌다. 제주라이온스클럽이 1964년 어린이날을 기념해 건립했다. 어린이헌장은 '모든 어린이가 차별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나라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야 한다'며 11가지 조항을 명시했다. 사라봉 정상 소나무 아래 '어린이는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이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제주교육가족'을 이끄는 양 교육감도 언젠가 어린이헌장 앞을 지나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