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 화백의 이야기판 미술과 역사가 만나 빚어낸 풍경(2)

[박경훈 화백의 이야기판 미술과 역사가 만나 빚어낸 풍경(2)
[경술국치 100년,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기원, 갑오년 경술년!
  • 입력 : 2010. 10.22(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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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이후 대대적인 의병항쟁의 불이 타올랐다. 그리고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이 시작되었다. 사진은 당시에 붙잡힌 의병장들의 기록사진이다. 그 위로 일본도의 날선 칼날이 지나고 조선민중의 붉은 피가 선연하다.

100년 보다 더 이전 서구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던 시기에 아시아는 적어도 비유적으로 중세의 깊은 잠에서 덜 깬 미몽의 세계였다. 조공과 책봉의 아시아적 질서가 견고하게 자리 잡았던 아시아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일어나 동진하는 불과 쇠로 무장한 구미열강의 진군소리를 감지하지 못한 채, 자금성에 갇힌 지나 대륙, 공룡의 잠과 오랫동안 외척 정치에 매몰되어 세상의 변화를 예견하고 그 변화를 주도하지 못한 소중화의 나라 조선이 있었다.

▶근정전에 내걸린 일장기. 조선왕조의 패망의 상징.

그 시기 왕조는 이미 기울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200여 년 전에 멸망했어야 옳았을지도 몰랐던 소중화 조선은 외척정치와 탐관오리들의 폭정으로 피폐한 백성들의 고통과 굴종에 맞선 항쟁으로 타오르던 땅이었다.

그 지점에 갑오년, 동학이 있었다. 인내천(人乃天) 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사상이 미망의 조선 인민을 깨우고 있었다. 이는 서구의 주권재민사상보다도 앞섰다고 하는 우리 안의 근대가 이미 싹을 띄우고 있던 것이다.

▶정한의론도. 당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입장은 이처럼 첨예하게 논쟁화 되고 있었으나, 쇄국으로 굳게 문들 닫아 건 조선은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의 길을 가게 된다.



그것은 서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동에서 시작된 내부로 부터의 근대의 시작이었다. 몸과 땅은 아직 중세의 굴레 안에 있었지만, 정신은 이미 만민평등의 사상을 지닌 개벽을 향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조일연합군에 의한 진압과 초토화 학살이 있었다. 우금티 고개마루에는 아직도 동학군의 뼈가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경술년이 있었다. 이 모두는 불가의 연기설처럼 서로 연동되어 있던, 연속되고 단일한 프로세스였던 것이다. 그 날 일본군과 연합하여 동학을 궤멸시킨 조선왕조는 기실 그 자신의 몸뚱아리를 난자한 것이었다. 맨 나중에 난자당한 것은 명성황후였다.

▶명성황후. 비운의 황후였던 그녀의 죽음은 곧 조선의 죽음이기도 했다. 황권의 심장이었던 그녀를 일본은 낭인들이 침탈해 난자한 것처럼 꾸몄으나, 그 것은 준비된 당대 일본의 최고의 지식인들과 정치적인 음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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