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스쿠니>, 천 위에 나염·철·FRP·이미지 실사
텐노 헤이카 반자이
'텐노 헤이카 반자이', 우리말로 '천황 폐하 만세'라고 번역되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적 언어이며 구호다. 패전과 동시에 인간선언을 하기 이전에는 범접할 수 없었던 성스런 구호였으며, 제국의 상징이며 힘의 실체였던 천황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대표했던 제국의 언어였다. 제국일본은 이 구호로 그들이 강점한 대동아를 경영했다. 물론 현재에도 천황에 대한 이 구호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야스쿠니 신사, 신의 안식처
야스쿠니 신사는 1869년 메이지천황의 포고에 의해 육해군성 및 내부성 관할 하에 '천황 즉 국가(天皇卽國家)'의 명을 높이 받든 '군의 신사'로서 창건되었다. 그 후, 청일전쟁,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군인 등 소위 '천황의 계율에 잘 따르는'(군인칙령) 이들이 그곳에 차례차례 합사하게 되었다.
1979년에는 동경재판에서 대표적 전범으로 처형된 도조히데키(東條英機) 등 A급 전범도 합사되었다. 제국 육군의 주도권 아래서 일본인의 생활에 뿌리 내린 조상숭배와 영혼관이 교묘하게 흡수되면서 국가(천황제) 내셔널리즘을 강화하는 '성스러운' 영역으로서 오랫동안 그 역할을 해 온 야스쿠니 신사는 그 시작부터 일본의 전통과는 다른 메이지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곳은 단순한 일본의 전통적 신사와는 그 계보부터가 다르다. 천황에 순종하는 죽은 병사들의 영령을 모신 곳이기 때문이다.

▲<야스쿠니> 내부 부분도

▲<텐노 헤이카 반자이>, 군복·거울·FRP·철
과거 군국주의 일본으로부터의 깊은 트라우마가 응어리진 역사를 갖고 있는 동아시아 제국(諸國)의 입장에서 보면, 야스쿠니 신사를 지속적으로 일본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즉, 엄밀한 의미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천황과 군국주의만을 위한 신사였다는 점이다. 야스쿠니와 군국주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뚱어리인 것이다.
인간선언, 천황제 존속을 위한 이벤트
지난 8월 15일 전시준비차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바 있다. 그리고 비로소 야스쿠니 신사와 천황 그리고 일본의 군군주의적 극우파의 전통이 한몸뚱어리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황을 정점으로 한 삼위일체인 것이다.
최근 일본의 민주당정부는 변화하는 아시아의 환경에 주도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출범과 동시에 '입아탈구'를 선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선언일 뿐 그들의 행위는 여전히 미국주도의 동아시아 전략 속에 국가 이익을 확보하는 냉전시대 이래의 전략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즉, 국가로서의 일본은 여전히 아시아의 일원이기보다는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려 했던 100년 전의 국가전략을 수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텐노이카루스>, 철·동판
1946년 1월, 히로히토는 연두 조서를 통해 천황이 인간임을 선언한다. 이는 만세일계 신의 상태에서 저질러진 태평양전쟁의 전범영수로서의 책임을 평범한 인간이 되었다는 선언 하나를 통해 말끔히 청산한 희대의 이벤트였다. 최고 전범을 미국과 일본 두 나라의 이해관계 속에서 그들 방식대로 처리한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 제국가들에 대한 전후 청산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미국의 아시아 경영에 필요한 만큼은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아시아는 현재까지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왜냐하면, 천황은 바로 그 군국주의 제국이 저질렀던 모든 전말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천황은 인간선언이라는 비장한 코미디를 통해 수억 아시아인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의 면죄부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 오래지 않아 그들은 야스쿠니에 외교적으로 공식적으로 해체해 버린 군국주의 일본의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바로 야스쿠니 신사다. 그리고 오늘도 그 아카이브는 일본 군국주의의 영광을 전수하는 교육의 장으로 훌륭하게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