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명소]성산읍 오조리 / 식산봉

[우리마을 명소]성산읍 오조리 / 식산봉
슬픈 이들의 못다이룬 사랑 올렛꾼 유혹
  • 입력 : 2010. 12.25(토) 00:00
  • 백금탁 기자 gtbaik@hallailbo.co.kr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소재 식산봉(食山峰)은 황근자생지로 유명하며 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처럼 보이는 오름으로 바오름, 바위오름, 바우오름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달팽이걸음 10분 오름입구 도착
수백년 해송 등 울창한 숲 자랑

2010년도의 끝자락이다. 오조리에 들어서면 길섶에 피어난 갈대꽃마다 바람이 머문다. 모시풀 사이로 가볍게 윙크하는 노란 들국이 정겹다. 맑게 솟는 샘물이며 내수면 위로 일렁이는 물결도 눈을 희롱한다. 순간, 퍼드득 철새들이 난다.

처음 바우오름 정상을 찾은 것은 1999년 겨울 이맘 때쯤이었나 싶다. 사진 찍기 위해 황근자생지를 찾아 첫 대면한 바우오름. 당시는 숲길 덤불과 대나무숲을 헤치면서 길을 찾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바우오름의 모습은 도로며 목책시설이며 사람의 손을 너무 많이 타 아쉽다.

바우오름 정상에서 바라봤던 일출봉이며 우도의 모습을 떠올리며 발길을 옮긴다. 느린 달팽이 걸음으로 걷다보니 오름 입구까지는 10여분이 걸렸다. 오름을 오르는 돌계단이 새롭다. 돌계단 위에는 가리비처럼 얇고 넓적한 바위가 이방인을 맞는다.

겨울 찬바람속에 멀리서 바라본 오름의 모습과 달리 탐방길은 포근했다. 삼각형 모양의 까칠한 외모와는 달리 수백년이 넘은 해송이며 갖가지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폭신하다. 10여m 높이에 위치한 해송 가지 사이로 한그루의 나무가 기생하듯 자라고 있다. 낙엽진 앙상한 가지만 남아 무슨 나무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제를 올리던 터도 있다. 제주석과 시멘트를 만든 제단이 오랜 세월을 말한다. 제단을 뒤로하고 목책길을 따라 정상으로 치닫는다. 올레꾼을 만나 가볍게 인사도 나눈다.오름은 높지 않았다. 입구에서 출발한지 10여분 만에 정상에 닿았다. 소나무로 둘러쌓인 정상에는 나무로 만든 쉼터가 있다. 발 아래로 바다쑥이며 달래, 청미래덩굴, 인동초, 천남성 등이 보인다. 높이 자란 장신 소나무군단이 버텨서면서 온전한 일출봉이며 우도의 자태를 보기에는 힘들다. 아쉬운 대로 솔가지 사이로 대략 가늠할 뿐이다.일출봉과 우도가 눈을 희롱할 때쯤, 바우오름에 깃든 옥녀(玉女)의 억울한 혼이 뾰족한 솔잎 끝에 서린다.

전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양반집 처녀 옥녀가 사랑한 대장장이 아들 부씨 총각. 당시 오조리해안을 지키던 조방장(助防將)의 질투에 부씨 총각은 죽임을 당하고 옥녀는 부씨 총각을 찾아 헤맨 끝에 바우오름 동쪽 바닷가에서 사랑하는 이의 시체를 발견한다. 부둥켜 안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울다 울다 굳어져 버린 옥녀. 그 것이 바우오름이다. <김종철의 '오름나그네 2', 1995년, 도서출판 높은오름 내용 참조>

옥녀는 바우오름으로 남아 숨진채 장시머들(오름 동쪽 바닷가의 돌이 무덕진 곳)을 바라본다. 신분을 넘어선 남녀의 못다한 사랑이 애틋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자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애통해 하는 모습(玉女散髮形)'이라는 풍수설엔 비련의 전설이 남아 있다. 바우오름과 장시머들은 지척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못다 이룬 사랑의 애틋함을 보여준다. 지금은 올렛꾼들이 오가며 슬픈 이들의 못다이룬 사랑을 기억한다.

▲오래된 해송사이로 영주십경 중의 하나인 성산일출봉이 보인다./사진=백금탁기자

▲식산봉으로 가는 길에 피어난 유채꽃 모습.

[ 오조리와 바우오름은 ]

많은 철새와 예술가, 올레꾼들. 사람과 자연이 함께 깃드는 곳 오조리. 청정한 내수면과 새들의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바우오름,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멀찌기 서있는 일출봉이 한데 어울리며 이들을 이 곳으로 불러낸다.

오조리는 일주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성산고등학교 전 길목이나 성산 동남을 지나 천주교 성당 입구로 들어서면 만날 수 있다.

오조리(吾照里)'의 '오(吾)'는 나를 의미한다. '조(照)'는 '비춰준다'라는 뜻을 함축한다. 예부터 일출봉에 해가 뜨면 제일 먼저 '나를 비춰준다'는 의미로 오조리는 '햇빛 비치는 마을'이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내수면 위로 붉은 기운이 일렁인다. 밤이면 일출봉과 성산 일대 민가와 상가의 불빛이 해수면 위로 내려 앉는다. 그야말로 오조리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장관이란다.

표고 60.2m의 바우오름은 '식산봉(食山峰)'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왜구의 침범이 잦을 때 조방장의 지략으로 오름 전체에 '노람지(가마니, 이엉)'를 덮어 군량미가 산더미처럼 쌓인 것처럼 보이게 꾸민 것이 보기 좋게 성공, 멀리서 본 왜구들이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났다는 이야기에서 지명이 유래한다. 그로부터 '식산'이라 불렀단다.

바우오름은 황근자생지로도 유명하다. 황근은 환경부가 지정한 특정야생식물로 제주도와 거문도에만 분포한다. 6~8월쯤 황색꽃이 피어나며 바우오름 둘레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바우오름 입구에서 만난 김관협(49) 오조리장은 "오조리는 다른 마을에 비해 옛 모습을 아직까지 잘 보존하고 있다"며 "일출봉이 아름다운 것은 오조리 내수면과 바우오름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일출봉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면 그 모습은 지금보다 초라했을 것이라며 오조리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간직한 전형적인 마을이라고 말한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302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