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명소]대정·안덕 /'추사 유배길'

[우리마을 명소]대정·안덕 /'추사 유배길'
유배의 길, 그 곳에서 인생의 길을 묻다
  • 입력 : 2011. 03.26(토) 00:00
  • 백금탁 기자 haru@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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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길을 돌아 대정향교로 향한다. 좁게 난 길을 따라 걸으며 추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추사가 떠난 길엔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향교 너머로 산방산도 보인다. /사진=강경민기자

대정향교 순환 등 체험코스 내달 개장
차 향 머금은 유배길 관광자원화 기대


3월의 끝자락,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제법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의 제주생활도 그랬을까. 추사가 유배지인 제주에서 거닐었던 '추사 유배길'이 다음달 23일 개장한다. 그가 선비로서 '예던 길'은 서귀포시 대정과 안덕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유배생활의 노정이다. 추사가 제주에서 생활한 8년3개월간의 여정을 현대인들이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사색의 길이다.

추사 유배길은 3개 코스로 이뤄진다.

1코스는 국가지정 사적 제487호인 추사적거지를 기점으로 대정향교를 순환하는 코스다. 추사는 초가에 기거하면서 학문과 예술에 몰입, 추사체를 완성하고 국보 제180호인 세한도를 그려냈다. 2코스는 적거지를 출발해 오설록에 이른다. 추사가 즐겼던 수선화와 차를 주제로 하고 있다. 3코스는 대정향교를 거쳐 산방산을 경유, 안덕계곡으로 이어진다.

▲2코스에 포함된 녹차밭 전경. 멀리 눈이 녹지 않은 한라산이 보인다.

지난 22일 찾은 추사적거지는 선비의 자태다. 초가와 돌담 주위를 둘러싼 수선화의 알싸한 꽃향이 시린 바람을 타고 올라 코끝에 남는다. 추사가 즐겼던 녹차도 적거지 돌담에 기대 추운 겨울을 버텨냈다. 울타리 너머로 노랗게 익은 탱자가 머리를 내밀어 객을 반긴다. 추사의 '위리안치(탱자나무 울타리를 통한 가택연금)'의 신세를 가늠케 한다.

바람따라 길을 돌아 대정향교로 향한다. 좁게 난 길을 따라 걸으며 추사는 이 길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마늘, 유채, 감자가 자라는 이 들녘에서 잠시 길을 멈춘다. 발 아래로 광대나물이 보라빛으로 피어난다.

단산 입구에 닿을 쯤 지척에 대정향교가 보인다. 향교 담 넘어로 보이는 소나무가 세풍에 이겨낸 세한도를 연상케 한다. 산방산도 멀리 보인다. 그 소로를 따라 추사의 걷는 모습이 연상된다. 추사가 향교 앞에서 목을 축였을 샘이물도 반갑다. 향교에는 의문당이라는 글씨도 선명하다. 혹자들은 추사나 추사의 제자가 썼다고들 한다.

▲추사적거지 전경. 초가를 둘러싼 돌담 중앙에 정낭이 자리잡고 있다.

추사 유배길은 대부분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다. 적거지는 물론이고 대정향교, 산방산, 안덕계곡 등 모두가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길 나서기에 앞서 추사 유배길은 사색의 길이라는 점을 감안하다면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에게로 떠나는 '유배의 길'이기도 하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절제를 통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완성한 추사가 걷던 이 길에서 인생의 길을 되묻게 한다.

제주대학교 스토리텔링연구개발센터는 추사 유배밥상을 개발했다. 추사가 즐겨 마셨다는 보리누룩으로 빚은 막걸리도 선보인다. 마을사람들이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애향심을 자극하고 소득증대도 기대된다. 유배문화를 관광자원화 한다는 취지다.

추사 유배길을 제안한 양진건 제주대 교수는 제주자연의 풍광을 보는 것보다는 그 곳에서 인생의 길을 묻고 머리로 걷는 길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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