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 보존과 활용 어떻게 할 것인가/국내외 유적 정비현 장을 가다](10)에필로그

[유적 보존과 활용 어떻게 할 것인가/국내외 유적 정비현 장을 가다](10)에필로그
국가사적 불구 무관심 속 방치·땜질식 정비 여전
  • 입력 : 2011. 05.18(수) 00:00
  • /이윤형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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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 받는 고고역사유산

외면 받는 고고역사유산

▲고산리 선사유적지(사진 위)와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등 국제적인 시각에서 중요성이 평가되는 유적들이 행정의 무관심속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고산리 선사유적지는 1987년 첫 발견된 이래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만 몇차례 이뤄졌을 뿐 정식 발굴조사 조차도 없었다. 중앙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제주도 차원에서의 치밀한 논리 개발이 시급하다. /사진=강경민기자

미래 문화자원으로 활용 위한 전략적 사고 필요
다른 지방 문화권 활발 추진… 제주도는 뒷짐만

제주의 고고역사유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제주의 여타 유·무형의 민속문화유산도 그렇지만 고고역사유산 역시 무관심 속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주도의 경우 국제적인 시각에서 중요성이 평가되는 유적들이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고산리 선사유적지와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도내 곳곳에서 확인되는 패총유적이나 삼양동유적, 최근에 발굴된 용담동유적 등은 제주의 선사·역사문화가 섬 속에 갇힌 박제된 문화가 아니라 주변 여러 지역과의 교류와 소통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이 중에서 고산리 선사유적(사적 412호)의 경우는 1987년 첫 발견된 이후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만 몇 차례 했을 뿐 정식발굴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그런 탓인지 정식 발굴조사보고서 하나 없는 것이 고산리 유적의 현주소다. 허허벌판에 안내판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현장은 명색이 국가사적이자 국사교과서에 실려 있는 유적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초라하다.

부끄러운 현실이기 하지만 고산리 유적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이 유적은 동아시아 초기신석기문화의 발생과 문화전파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이나 중국 일본 등지에서 발견되는 후기구석기와 초기신석기 사이의 유적들이 비교대상이 된다. 이 점은 결국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고산리유적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경이 없는 시대에 인류의 이동과 제주 원주민 또는 한민족 현생 인류의 뿌리찾기와도 연관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이 발전시킨 문화가 바로 고산리유적에서 확인되는 토기와 석기 등 유물들이다.

▲허허벌판에 세워진 사적 412호 고산리 선사유적지 안내판.

비록 늦었지만 고산리유적은 이제 긴 휴지기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제주시에서 올해 종합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본격적인 조사 정비방안 모색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정비방안은 체계적이며 주변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시각에서 추진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 단지 정비에만 매달린다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발굴조사를 통한 학술적 성격규명을 진행하는 동시에 이를 계획에 반영하고 문화자원으로 활용해 나가려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역시 국가사적인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제396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항파두리는 1970년대 말 박정희 정부에 의해 정치적 논리로 성급히 성역화가 추진되는 바람에 유적의 성격을 무시한 졸속정비의 표본이 됐다. 문제는 그 후에도 지자체에 의해 토성의 축조상태나 유구 등 건물지에 대한 정확한 고증없이 주먹구구식 정비사업이 진행돼 왔다는 사실이다.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토성을 정비한다는 명목아래 파헤쳐 보수하는 사례는 당국의 문화마인드를 의심케 한다. 항파두리 토성은 매년 땜질식 정비가 이뤄지면서 정비가 아니라 오히려 원형훼손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제주시가 그동안의 정비과정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항파두리종합정비방안을 수립한 뒤 이를 토대로 체계적인 정비사업에 나서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제주목관아와 제주성지 등을 포함한 제주시 구도심권도 그동안 탐라문화권 발전계획 등에 기본방향이 제시돼 있는 상태지만 중구난방식 온갖 담론만 무성할뿐이다. 최근에는 제주도에서 탐라문화광장 조성이라는 플랜을 들고나와 용역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당국에서 오히려 구도심권 개발방식에 대한 혼란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다른 지자체의 경우는 수년 전부터 막대한 국비를 지원받아 문화권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고고역사자원을 문화관광인프라 측면에서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우근민 지사도 탐라문화권 조성사업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아직까지는 유야무야 상태다. 취재팀이 방문했던 국내외 사례나 다른 지방의 문화권 정비사업을 보면 결국 지자체의 적극적인 의지가 관건이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논리개발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근민 도정 공약 탐라문화권 흐지부지
타지역 막대한 국비 투입 불구 제주는 문화인프라 정비 '뒷전'


다른 지방처럼 제주도의 경우도 김태환 지사 당시부터 탐라문화권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심을 표명하는 듯 했으나 흐지브지 되고 말았다. 이어 지난해 취임한 우근민 지사 역시 탐라문화권 추진을 도정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다른 지방의 사례를 살펴보면 백제문화권 조성사업에는 1977년부터 2010년까지 3단계에 걸쳐 총 사업비 2조7284억 원(국비 9462억원 34.7%, 지방비 7857억원 28.8%, 민자 9965억원 36.5%)이 투입됐다.

충청남도 서산과 예산을 중심으로 한 내포문화권개발사업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3단계로 나눠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에는 1조506억원(국비 4502억원 42.9%, 지방비 5258억원 50%, 민자 746억원 7.1%)이 투입되고 있다.

또한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한 고대 영산강유역문화권도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조1301억원(국비 5304억원, 지방비 5542억원, 민자 454억원)을 투입 조성중에 있다.

충청북도를 중심으로 한 중원문화권 조성사업도 지난 2002년부터 오는 2020년까지 3단계로 나눠 1조619억원(국비 3470억원, 지방비 3871억원, 민자 3278억원)이 투입되고 있다.

가야문화권 정비에도 8971억원이라는 사업비가 투입돼 문화인프라 정비를 이끌어냈다.

다른 지자체가 이처럼 문화권 조성사업을 벌이는 동안 틈만 나면 고대 탐라국의 독자성과 고유문화를 강조해온 제주도는 제대로 추진조차 못하고 시일만 끌다가 흐지부지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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