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옥의 식물이야기](31)큰처녀고사리 학명의 비밀

[문명옥의 식물이야기](31)큰처녀고사리 학명의 비밀
  • 입력 : 2011. 08.27(토)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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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처음 소개된 제주 양치식물인 큰처녀고사리의 학명에는 '제주 출신이다'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타케신부 1908년 9월 해발 1000m서 채집
조릿대·도롱뇽 등과 '제주출신'의미 내포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짓고 출생신고를 한다. 이런 절차를 통해 이름을 갖게 되고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식물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친다. 새로운 존재가 밝혀지면 이름을 짓고 일련의 절차를 통해 명문화하여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런 이름짓기의 과정은 보통 식물분류학자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때 부여되는 이름을 학명(學名, scientific name)이라 하고 세계 공통의 이름이 된다. 이런 학명은 우선권이 있어서 똑같은 식물이 다른 시점에 이름이 등록될 때, 먼저 발표된 학명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908년 한라산 중턱에서 타케신부(Emile Joseph Taquet)가 여러 점의 양치식물을 채집했다. 이 표본은 유럽의 양치식물 분류학자인 크리스트(H. Christ)에게 전달되어 감정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식물은 신종으로 판정되어 1910년에 드리오프테리스 퀠파르텐시스(Dryopteris quelpartensis H. Christ)라는 학명을 부여받게 되었다. 이 종이 바로 제주에서 세계에 최초로 알려진 양치식물 큰처녀고사리이다.

최초로 학명이 붙여질 때 관찰하고 인용되어진 표본을 기준표본(基準標本, type specimen)이라 한다. 타케신부가 채집한 큰처녀고사리의 기준표본 no. 2370은 1908년 9월 18일, Quelpart, 해발 1,000m, sepibus Sokpat으로 채집일자와 장소가 기록되어 있다. 'Quelpart'는 당시 유럽에서 제주도를 칭하는 이름이었고, 채집장소는 'Sokpat 돌담주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추측컨대 기준표본 채집지는 아마 현재의 성판악 등산로 3.5㎞ 지점, 해발 1,050~1,100m의 일명 '속밭'지역일 것으로 생각된다.

큰처녀고사리의 학명에 사용된 'quelpartensis'는 당시 유럽에서 불리던 제주의 지명인 'Quelpart'와 존재함을 나타내는 어미 '-ensis'의 조합으로 '제주 출신이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제주조릿대, 제주도룡뇽 등의 학명에 사용된 'quelpartensis'도 같은 의미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1914년에 러시아 식물학자가 캄챠카에서 채집한 양치식물을 드리오프테리스 캄챠티카(Dryopteris kamtschatica Kom.)로 신종발표하였으나 큰처녀고사리와 같은 식물로 밝혀졌다. 큰처녀고사리의 신종발표가 몇 해만 늦었다면 캄챠카 출신의 드리오프테리스 캄챠티카로 불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학박사·제주대 기초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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