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옥의 식물이야기](32)기후변화 피해 오름서 자라난 피뿌리풀

[문명옥의 식물이야기](32)기후변화 피해 오름서 자라난 피뿌리풀
  • 입력 : 2011. 09.03(토)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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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과 오른쪽은 몽골의 오름과 피뿌리풀. /사진 제공=김진 ▲사진 오른쪽 아래 두장은 제주오름의 피뿌리풀과 노랑개자리.

한라산 고지대·남한 등 분포하지 않아
몽골지배기 건초 등과 같이 유입 추정

제주의 오름엔 몽골의 초원식물이 있다

얼마 전 학술조사차 몽골을 다녀왔다. 드넓은 초원과 제주의 오름을 닮은 능선들이 만들어내는 풍광은 제주의 자연과 너무 비슷해 낯설지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초원에서 피뿌리풀 군락을 보았다. 초원을 가득 메운 피뿌리풀 군락은 그 자체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제주의 오름에도 피뿌리풀이 자란다. 이 식물은 세계적으로는 중국, 부탄, 몽골, 네팔, 러시아 등지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에는 황해도 북부의 일부지역에 자란다. 소위 말하는 북방계식물이다.

제주의 오름엔 피뿌리풀과 비슷한 분포를 하는 식물들이 자란다. 노랑개자리, 솔체꽃, 애기우산나물, 물매화 등이 그렇다. 이 식물들은 원래 자라는 곳을 따지자면 한라산의 고지대에 분포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한반도 북부를 제외한 남한에도 거의 분포하지도 않고, 훌쩍 뛰어넘어 한라산 고지대도 아닌 제주의 오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이 식물들은 어떻게 제주의 오름에 분포하게 되었을까?

추측해 보자. 먼저 유존종(遺存種, 격리되어 생존하고 있는 종)으로서 오름에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다시 말하면 기후변화에 따른 피난처로서 오름 환경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오름이 피난처였다면 오히려 한라산의 고지대가 더 유리한 환경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현재 이 종들의 분포를 보면 피뿌리풀, 노랑개자리, 애기우산나물 등은 한라산 고지대에서 자라고 있지 않다. 또한 한반도 중부에도 분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이러한 가능성을 희박하게 한다.

그런데 이들 식물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모두 몽골의 초원에 매우 흔한 식물이라는 점이다. 제주는 알다시피 몽골의 지배를 무려 100년 동안이나 받은 적이 있다. 게다가 몽골 말을 가져와 목마장을 만들고 키웠다는 기록이 있다. 가축이 먼 거리를 이동했다면 건초와 집기 등도 같이 이동되었을 것이다. 혹시 이때에 씨앗 등이 같이 들어와 정착한 식물들은 아닐까?

몽골에서 넓게 펼쳐진 피뿌리풀 군락을 보며, 과거 제주의 오름에서 바람을 타며 군무하던 피뿌리풀의 향연을 잠시 느껴보았다.

<이학박사·제주대 기초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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