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유치원 책읽어주기 등 서비스
맞춤별 독서교실 어린이들에 인기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문화 생성
제주도 유일의 민간 어린이도서관인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임기수씨. 그는 매주 금요일이면 자원봉사자와 함께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물메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찾아간다. 책 10권을 가져가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위해서다.
"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시골도 아닌 '샌드위치 지역'의 어린이들은 도서관 문화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지요. 특히 그런 지역에는 결손가정이 많아 그 시기에 필요한 그림책이나 창작동화를 접해보지 못한 아이들이 허다합니다."
2005년부터 농촌유치원 책읽어주기 서비스를 시작한 이유다. 여타의 많은 문화단체들이 하는 것처럼 1회성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특정 병설유치원을 선정해 4월부터 12월 초까지 1년간 집중적으로 책읽기와 함께 색깔놀이, 만들기 등의 문화프로그램을 제공한다.
"4~6월에는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던 아이들이 여름방학이 지난 이후에는 재미를 느끼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그가 진행하는 작은 문화운동이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은 멀뚱멀뚱했던 아이들이 또랑또랑해진 것을 보면 안다.
현재 제주도는 인구 대비 공공도서관 인프라가 전국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매머드급으로 진화하는 공공도서관은 단순한 도서 대출·반납 기능에만 치중해 문화 생성이라는 도서관 본연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바로 그 점에 주목해 도서관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은 이용하는 아이들의 모든 엄마가 대표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책읽는여우' 모임에서 배출된 자원봉사자들이 그렇고, 이른바 '설문대어린이도서관 지킴이' 역할을 하는 엄마들도 그렇다. 그들은 매일 순번을 정해 도서관에 상주하며, 머리를 맞대 아이들에게 필요한 도서관 정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공공도서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책읽기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지난여름에는 도서관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악당개미 도서관을 점령하라!'는 행사를 치렀다. 컴퓨터와 게임기 등 전자기기 환경에 물든 아이들에게 종이책의 소중함을 심어주기 위한 맞춤별 여름 독서교실도 차별화된 프로그램이다.
겨울에는 반대로 책을 전혀 읽지 않는 행사를 열 예정이다. 40명을 모집해 모둠을 짠 뒤 그림을 해석하고 시나리오를 짜게 해서 그림자극을 만들거나 집에서 폐품을 가져와 인형극을 제작한 뒤 엄마들을 초청해 공연하는 식이다. 그래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은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된다.
도서관은 240명 안팎 이용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임대료 40만원을 뺀 나머지로 신간도서를 구입하고 운영비에 충당하려면 후원금 120만원은 터무니없는 액수다. "영리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을 따질 일이 아니지요. 좋아하는 엄마들이 모이고 문화를 형성해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설문대어린이도서관 프로그램은 공공도서관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작은 도서관을 필요로 하는 엄마들과 함께 새로운 주제를 찾고 프로그램을 구성하느라 고민하는 그의 실험과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