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떵살암수과]'큰심방' 김윤수·이용옥부부

[어떵살암수과]'큰심방' 김윤수·이용옥부부
40년간 타인의 마음의 병 치유 큰 뜻
  • 입력 : 2012. 05.19(토) 00:00
  •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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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심방' 김윤수씨는 16살, 이용옥씨는 13살부터 심방일에 매진했다. 이들 부부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을 유네스코 인류문화 등재에 노력했고 앞으로 제주 도민의 무사안녕과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데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사진=김명선기자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유네스코 등재 혼신
미신타파·새마을운동 여파 소멸 위기도
무사안녕·풍어·풍농 기원 도민축제 노력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을 치유해 온 김윤수·이용옥 심방부부. 심방 세계에서는 큰심방으로 불리는 김윤수(67)씨는 16살, 이용옥(58)씨는 13살이 되던 해에 심방일을 시작했다.

김씨의 집안은 4대째 심방일을 해오고 있다. 그가 16살이 되던 해 큰아버지(故 김천연씨)가 돌아가신 후 몸이 아팠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저곳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당시 심방을 하던 큰어머니의 권유로 무속인이 됐고 이후 병이 기적처럼 말끔히 나았다.

이 심방은 6살 때 친척집에 가는 길에 빨강색 주명기 날리는 것을 보고 가보니 6개의 간제비(동전)을 줍고난 뒤 신기가 생겼고, 13살부터 본격적으로 심방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들이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김씨가 23살 때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후 찾은 굿판에서 시작됐다. 첫만남 이후 군으로 복귀했고 서로 편지를 주고 받다가 연인으로 발전해 제대 후에 결혼했다.

김씨 부부는 40년간 함께 수천명에 이르는 사람의 '마음의 병'을 치유해 줬다. 또한 이들은 제주칠머리당영등굿(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이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등재(2009년)되기까지 제주굿을 알리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김씨 부부는 "지금처럼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고 의료기관도 많지 않던 시절에 병을 고치려고 심방을 찾는 일이 많았다"며 "심방이 의사는 아니었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병을 치유함으로써 완쾌가 되는 이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미신타파', 새마을운동으로 굿을 거의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몰래 숨어서 하긴 했지만 굿을 열리는 횟수가 크게 감소했었다"고 회상했다.

김씨 부부의 단골 중에는 이름만 말해도 알 수 있는 유명한 의사도 있었다.

의사인 A씨의 큰 형이 4·3 당시 머리에 총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언제부터가 A씨도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병원에서는 그의 병을 진단하지 못했다.

A씨의 어머니가 결국에는 아들의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굿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번에는 도의원 선거에 출마한 A씨의 작은 형이 크게 반대를 했다. A씨의 형은 "서울에 가서 치료하면 낳을 수 있다"면서 미신으로 치료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하지만 A씨의 어머니는 굿을 했고 일주일 후에 A씨는 완쾌됐다.

이제는 굿에 대한 일반인들이 생각이 많이 바뀌면서 토속신앙으로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김씨 부부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당이 모셔진 제주시 건입동만의 굿이 아닌 제주도민 모두의 무사안녕과 풍어·풍농을 기원할 수 있는 축제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김씨 부부는 "입춘굿이 복원된 뒤로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도민의 축제로 성장한 상태"라며 "이처럼 제주칠머리당영등굿에도 도민은 물론 관광객까지 찾아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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