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개발 20년, 그 현장에 서다](14)트리플 크라운, 한라산의 그림자

[제주개발 20년, 그 현장에 서다](14)트리플 크라운, 한라산의 그림자
스러져가는 제주의 靈山
  • 입력 : 2011. 11.09(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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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과 선작지왓. /사진=김홍구 제공

얼마 전, 한라산국립공원의 관리권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다. 제주가 특별자치도로서 국립공원의 관리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국립공원의 관리권을 국가가 되가져 간다는 것이었다. 제주도민으로서는 이 사건이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도정이 어찌했길래 이런 결과가 나왔나 질타의 목소리도 쏟아져 나왔다.

한편으로는 이런 목소리도 나왔다. 다른 지역의 국립공원과 차별없이 관리할 거면 차라리 관리비라도 아끼게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는 것이었다.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이라는 유네스코의 트리플 크라운을 자랑스럽게 얻고 있는 한라산은 그 가치만큼 관리되고 있는지 제주도는 이에 대한 자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1. 케이블카 설치 논란부터

지난 2007년 한라산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하지만, 2009년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 물론 2009년 케이블카 논란은 탐방로의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로 서두를 꺼냈지만, 케이블카는 분명히 이용을 전제로 하는 화법이다.

그 근거로 케이블카는 설치하되 탐방로는 그대로 두는 오히려 한라산에는 이중 부담이 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이럴 거면 차라리 세계자연유산 타이틀을 반납하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분명히 세계자연유산의 개념은 보존개념을 철저히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고, 그 바탕에서 지속가능한 이용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케이블카를 검토하는 도정은 이와 상반된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보였다.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고 난 뒤, 도정의 세계자연유산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는 세계인들이 관심을 많이 가질 때, 많이 홍보하여 탐방객들이 많이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작지왓 주변의 탐방객들. 길게 줄서서 마치 행진하듯이 걷고 있다. /사진=김홍구 제공

2. 넘쳐나는 한라산, 신음하는 한라산

한라산을 찾는 탐방객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고 난 뒤에는 폭증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주말의 경우, 영실코스를 오르려면 오전 8시 이전에 주차장에 들어가야 한다. 늦으면 주차할 곳이 없다.

영실만이 아니다. 어리목·성판악·관음사 가리지 않고 주차장이 넘쳐 도로에 길게 늘어서 있는 주차 행렬을 보면 이대로 좋은지, 오히려 주차장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제주도의 생각을 알고 싶다.

한라산이 수용할 수 있는 적정한 탐방객수는 얼마일까? 이는 매우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제주도에서는 용역을 들여, 이를 수치화하려 하지만, 제주도가 어떤 관리철학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이 결과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제주도가 모를 리가 없다.

최근 한라산을 오르면, 선작지왓 근처의 구상나무 숲길을 걸을 때면 마주치는 사람들로 계속 옆 걸음을 걷는다. 길은 넓어지고 있다.

구상나무 숲의 호젓함과 향기는 이미 사라지고, 마주치는 사람을 피해가느라 정신이 없다. 계속해서 나무데크를 수리하는 손길과 새롭게 데크를 까는 모습이 보인다. 데크를 까느라 파헤쳐진 길에 '제주황기'가 위태롭게 걸쳐져 있다.

▲탐방객을 위한 데크 시설 중. 데크가 들어서는 자리의 식물들이 자리를 잃고 있다.

▲데크가 들어서는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제주특산 식물인 '제주황기' /사진=김홍구 제공

3. 탐방객은 만족하고 있는지

탐방객들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산을 찾는다. 일부는 이렇게 북적거리는 산에서 많은 사람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할 수도 있겠고, 단지 운동을 위해서 산을 오르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다.

산은 도시와 일상과는 다른 어떤 것이 있기에 찾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은 한라산의 관리를 잘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라산의 가치를 모르고 단지 오르기 위해 산을 찾는다는 것은 한라산에서 탐방객들이 얻을 수 있는 남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제주도정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이 곳은 세계자연유산이다'라고 표지로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이 곳의 가치를 소상히 알려야 하고, 자연을 만나는 자세와 철학을 심어주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세계자연유산을 들여다보면 철저한 사전교육과 인원제한, 다양한 프로그램, 고가의 관람료 등으로 다른 자연과 차별화하면서 가치를 높이고 있다. 문턱을 최대한 낮추어 많은 탐방객에만 집착하는 현재의 한라산 관리정책은 탐방객들에게도 만족을 줄 수 없고, 한라산의 유산적 가치를 스스로 깎아 내리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4. 또 다른 타이틀, 세계7대 자연경관

오는 11일이면 세계7대 자연경관 투표가 종결된다. 세계에 제주를 홍보하는 수단으로서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이 가지는 의미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의 노력이 소중한 결실로 맺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기우를 감출 수 없다.

지금까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제주의 자연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따는 데에만 의미를 두는 타이틀을 위한 타이틀로 머무를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정말 제주의 자연을 가지고 자자손손 먹고 살자면, 지금처럼 무작위로 자연으로 내모는 관리정책은 빠른 시기에 고갈을 초래할 것이다. 멀리 내다보면서, 자연과 공존하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그래야만 다시 한라산의 관리권 문제가 불거질 때, 우리 제주는 다른 지역과 다른 철학과 자세로 한라산을 대하고 있다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한라일보 - 천주교생명위원회-참여환경연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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