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석과 함께 하는 포스트독서]우석훈·박권일의 '88만원 세대'

[손봉석과 함께 하는 포스트독서]우석훈·박권일의 '88만원 세대'
  • 입력 : 2011. 11.15(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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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형제요 자식인 그들
국민 모두 봉사와 나눔의 확산을

며칠 전 HRA(Human Resources Academy)라는 인재육성프로그램의 후원회가 있었다. HRA 후원회에 참여하면서 나에게 도움을 준 공무원 선배님이 생각났다.

나는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10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가난이 싫었지만 돌파구는 없었다. 내가 답답함을 물어보자 어머님은 공부를 하라고 하시면서 그것만이 유일하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하셨다. 나는 공부가 하기 싫을 때마다 '공부를 그만두면 그 산골마을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부가 힘들었지만 그 마을로 다시 들어가는 것은 싫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만 했다. 가난 때문에 명문 사립대를 포기하고 국립세무대학에 들어갔다. 나보다 공부 못하는 친구들도 SKY를 가는데 나는 돈이 없어서 처음 들어본 세무대학을 갔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지 못한 것은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어머님은 그때 일을 지금도 평생의 한으로 생각하신다.

나는 대학에 가자마자 회계사 공부를 시작했다. 회계사에 합격만 하면 이 환경을 벗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공무원 선배님을 한 분 만나게 되었다. 나와는 학연이나 연고도 전혀 연관 없는 분이셨지만 공무원 생활을 하며 회계사 공부를 하는 나에게 많이 배려해 주셨다. 당신도 그렇게 어렵게 공부해서 사무관이 되었다고 그래서 나를 보니 도와주고 싶다고 하셨다. 시험 직전 두 달간은 일도 맡기지 않고 과거에 조사실로 쓰이던 빈 쪽 방을 내주셨다. 나중에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결혼할 때 주례를 그분께 부탁드렸다. 나중에 말씀하셨는데 그분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왔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갚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빚은 자신에게 갚을 것이 아니라 사회에 갚으라고 하셨다.

그 후 나는 회계사 생활을 하면서 한참 동안 그분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사실 다른 사람을 돌아볼 만큼 사회라는 현실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막연히 나중에 은퇴를 하고 여유가 되면 나도 봉사라는 것을 해보겠다는 가끔씩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명목적으로 몇몇 봉사단체에 참여해서 돈을 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HRA아카데미에 참여하면서 내 인생의 목표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내가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주기적으로 던졌고 결국 '사회의 도움을 받고 살아온 내가 그 빚을 갚아 나가는 것이 인생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나를 도와준 공무원 선배님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빚을 갚아야 했다. 내가 돈을 모으고 사회 활동을 하는 이유도 지금은 사회에 그 빚을 갚기 위함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것이 빚을 갚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얻는 것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마약과도 같아서 한번 맛보기는 힘들지만 맛을 보았다간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봉사와 나눔이라는 마약이 불법거래라도 되어서 온 국민이 한 사발씩 마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저자가 말하는 88만원 세대,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이고 동생이고 자식이다. 우리는 진 빚을 그들에게 갚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공인회계사 : @seomcpa, sbse-jejutax.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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