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한국메가스포츠전무는 부모의 고희연 장면을 기억하며 못다한 효에 대한 한을 풀어낸다. 사진은 2001년 서울 힐튼호텔에서 가진 김 전무의 부모님 피로연 모습.
2001년 부모님 고희연 사진에 담긴 한 풀어내
효의 마음은 자신을 올바로 세울 수 있는 기준
"효(孝)는 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기본입니다."
김상훈 한국메가스포츠전무(서울제주특별자치도민회 부회장, 재경대정향우회장)는 2001년 부모님의 고희(古稀)연을 잊지 못한다.
김 전무의 부친인 고(故) 김정효 선생은 7대독자인 사정 때문에 중학교시절 동갑인 김정숙 여사와 결혼, 21세의 젊은 나이에 첫째인 김 전무를 낳았다.
김 전무는 2001년 고희연을 잊지 못한다. 김 전무는 당시 동갑인 양친을 서울 힐튼호텔로 모셔 6남매(본래는 7남매이나 1녀는 사망)와 사위와 며느리, 손자손녀 모두가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고희연을 가졌다.
김 전무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가정을 꾸린 이후로도 매년 추석과 설명절에는 항공료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온 가족을 대동하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기를 한번도 거른 적인 없었다.
그런데 2001년 고희연을 가진 다음해인 2002년 설명절때 한 선배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도 좋지만 항공료를 아껴 부모님에게 드리는 것이 더 좋지않은가"라는 말을 듣고, 마침 편찮으신 부친의 서울지역 병원 예약일정도 있어 그 해 설명절에만 내려가지 않고 부친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2002년 설명절날 새벽 동생 식구들의 세배를 다 받으신 부친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다시는 깨어나시질 못했다.
김 전무는 "고희연의 사진을 볼 때마다 장남이 부친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회한이 남는다"고 말했다.
김 전무는 "이 일 이후 한결같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며 "늘 잘해오다가 한번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음을 항상 가슴에 담고 산다"고 전했다.
연세대 재학시절 재경학우회장을 맡으며 큰 꿈을 가졌던 김 전무.
부친이 믿었던 후배의 배신으로 인한 사업의 곤경을 장남이 자신이 헤쳐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에 한국화약에 입사했다가 중소기업으로 옮기고 스카웃 비용으로 부친 사업의 소송을 수년간 치뤄내면서 많은 어려움도 이겨내고 자신의 꿈도 접어야 했다.
하지만 늘 김 전무 삶의 기준의 된 것은 부모님과 동생들. 처해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부모님의 교육 때문이며, 부모에 대한 효의 마음은 자신을 올바로 세울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 김 전무의 생각이다.
김 전무는 "사람은 자신의 근원이 어디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며 고향과 부모에 대한 은혜를 항상 마음 속에 두고 생활해야 한다"며 "앞으로 효에 대해 공부를 계속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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