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되돌린 그때 그 추억](6)안재철 제주대 중문학과 교수

[사진으로 되돌린 그때 그 추억](6)안재철 제주대 중문학과 교수
"일방적 아닌 자연스레 보고 느끼는 게 진짜 교육"
  • 입력 : 2012. 02.08(수) 21: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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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교수와 같은 반 학생들이 광주일고 체육대회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재현한 가장행렬을 벌이고 있다. 당시 안 교수의 학급은 가장행렬 대회에서 12개 학급 중 1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1974년 광주일고 체육대회서 광주학생독립운동 재현
당시 학생탑 비문의 '학생운동정신' 인생관 자리잡아


▲안재철 교수

시간은 정차를 잊은 기차 마냥 급히 내달렸다. 제주대학교와 인연을 맺은 뒤 안재철(57) 교수는 수많은 제자를 품고 떠나보냈다. 뒤돌아보니 벌써 20년이 흘렀다.

흐르는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했다. 안 교수가 건넨 흑백사진은 누렇게 바랬고, 사진 속 까까머리 소년도 귀밑머리가 하얗게 셌다. 하지만 세월도 비켜간 것이 있다. 광주 태생인 안 교수의 지금을 있게 한 '학생운동 정신'이다.

"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만 우리의 생명이다" 사진 속 학생들이 받치고 있는 푯말의 글귀에는 비장함이 묻어난다. 그 뒤로 군복을 입은 학생과 교복 모자를 꾹 눌러쓴 학생들이 뒤엉켜있다. 몸싸움을 벌이는 양 하지만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사진은 1974년 광주일고 체육대회 날로 시계바늘을 돌려놓는다. 안 교수와 같은 반 학생들은 가장행렬 대회에서 일본군의 차별에 저항했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재현해냈다. 일제에 저항했던 학생들의 정신을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교단 뒤편에는 태극기를 중심으로 교훈과 학생운동탑 비문이 걸려있었다"며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비문의 뜻을 마음에 담으며 컸던 것도 그 영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탑 비문에 아로새겨진 학생운동 정신은 안 교수의 삶 전반을 꿰뚫는다. '정의가 아닌 것에 대항하고 올바른 일을 할 것'을 강조한 비문은 그의 인생관이 됐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삶의 방향을 다잡게 도와준 것도 학생운동 정신이었다.

안 교수의 교육관도 이를 비켜가지 않는다. 그의 교수법은 일일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학생들이 공부의 필요성을 직접 느끼도록 한다. 안 교수가 학생탑 비문을 보며 자연스레 인생관을 키운 것처럼, 그는 명령보다 자율을 중요시 여긴다. "화북에 있는 한 아파트에 살 때의 일입니다. 당시 엘리베이터 안에 좋은 글귀를 담을 게시판을 만들었습니다. 하루는 한 어머님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군요. 아들이 제가 넣어둔 효에 관한 글을 읽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부모님에게 잘하겠다고 했다더군요. 일방적인 가르침보다 자연스럽게 보고 느끼는 게 진정한 교육입니다."

안 교수는 대학 강의실에도 이러한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강의실 칠판 위에 '금연'이라는 표지판을 떼고 '제주의 지도자 양성소', '자랑스러운 제주인' 등의 글귀를 붙이면 어떨까요. 학생들에게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인생의 큰 포부를 가질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강의실에서 제주의 큰 지도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알림]'사진으로 되돌린 그때 그 추억'에 소개하고 싶은 사진을 모집합니다. 학창·군대 시절 사진, 여름 물놀이 사진, 초등교 소풍 때 사진 등 빛바랜 추억들을 들려 주세요.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전화(750-2250·2214)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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