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쉬운 길이 있음에도 어려운 길을 택해 묵묵히 걸어가는 이들을 두고 현대인들은 바보라고 부른다. 빛의 속도로 빠르게 변하는 현대적 삶 속에서 거꾸로 천천히 한 가지 일에만 몰입하는 그들의 삶이 쉽게 싫증내고 단시간에 뭔가를 이뤄내려는 조급증에 익숙해져버린 우리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어색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전통을 고수하면서 한평생을 한 가지 일에 몰두해 느린 열정을 보여준 '바보'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한국 무형문화재 9인의 삶과 예술, 그리고 그들의 느린 열정을 담은 책 '명인'이다.
'명인'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곳, 혹은 아무도 그 가치를 몰라주던 존재였지만 끊임없이 열정을 쏟아붓고 한 길을 걸어가면서 한국 예술·전통의 역사적 맥을 이어나가 '바보'가 아닌 무형문화재라는 칭호를 얻은 한국의 대표 명인 9인의 이야기다.
책에서 등장하는 누비장 김해자, 택견 정경화, 각도인 장주원, 사기장 김정옥, 별신굿 김영희·김용택, 가야금 병창 안숙선, 소목장 박명배, 별신굿 심방 김윤수 등 이상 9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책에는 이들의 삶과 예술, 그리고 꿋꿋이 걸어온 자신의 길에 대한 소회가 담겨있다.
이 가운데 제주의 명인 심방 김윤수씨 이야기가 담긴 '삶에 신명을 울리다, 제주의 큰심방 김윤수'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져가는 전통을 온몸으로 지켜내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어 전통문화에 대한 명인들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거친바다와 드센 바람을 항상 마주하는 제주 사람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들에 의지하지 않고는 삶을 기약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심방은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자로서 오랜 세월 제주사람들과 함께 해온 존재이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그 존재가치가 희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의 가치를 지키려는 그의 모습은 "제주도 사람들의 멘털리티와 그 속에 담긴 대자연과의 소통법을 엿볼 수 있는 삶"이라는 정준 제주MBC사장의 이야기처럼 그 지역의 전통적 삶 자체를 투영해내고 있다.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명인들의 삶을 통해 진정한 열정과 꿈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다"는 윤정식 청주MBC사장의 추천사처럼 책에는 명인들의 오롯이 빛나는 가치있는 삶이 담겨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남윤성·김정승·곽판주·김명곤·남우선·백운국·이순철·황병훈·이영훈·황일묵·박규현·박지현·송인섭·오승용·고동진·김지은·최시범 지음. 해피스토리. 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