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떵살암수과]동문수산시장 터줏대감 장순하씨

[어떵살암수과]동문수산시장 터줏대감 장순하씨
전통시장서 희망 일구는 ‘생선의 달인’
  • 입력 : 2012. 06.15(금) 00:00
  • 강봄 기자 spri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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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수산시장 터줏대감' 장순하씨는 20대 초반, 새댁시절 무작정 동문수산시장에 자리를 잡은 후 줄곧 30년간 이 곳을 지키고 있다. /사진=강경민기자

30년전 새댁, 우수시장 선정 '일등공신'
대형마트와 무한경쟁하며 情은 덤으로

이른 아침, 생선의 달인들이 가게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솜씨로 좌판을 펴기 시작한다. 하나둘씩 손님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시장 곳곳에서 흥겹고 정겨운 소리가 들린다.

"한 마리만 더 줍써게." 이는 날선 흥정이 아니다.

대형마트의 공세에 숨이 막힐 만도 한데 제주동문수산시장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고 펄떡거리는 수산물만큼이나 활기차다. 허세도 없다. '당일바리'만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30여년간 오직 한땀한땀 '생선'만 다뤄온 '생선의 달인' 장순하(57)씨. 비린내 진한 삶이 배인 그의 삶의 이야기가 시장 곳곳에 배어 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조차 모른다"는 그는 20대 초반 '새댁'이었던 시절, 이호포구에서 갓 잡아올린 생선을 컨테이너에 담아 동문수산시장에 내다 팔았다. 당시에는 지금의 해안도로도 없었다고 한다. 더구나 갓난 딸을 등에 업은 채 무겁고 비린내 나는 컨테이너를 간혹 오가는 버스에 싣기 위해서는 '차장'의 벽을 넘어서야만 했다.

"냄새 때문에 버스에 자리가 비었더라도 타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도 별 수 있나요. 그냥 무작정 들이밀었죠." 결국 '새댁' 시절의 인연으로 그는 동문수산시장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동문수산시장상인회의 부녀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6년 연속 전국우수시장박람회에서 우수시장으로 선정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한때 적잖은 영향을 받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대형마트보다 경쟁력에서 우위에 있다"는 그는 수산시장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관광객이란다. 특히 올렛길 탐방객들과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저렴한 먹거리를 찾아 이곳에 많이 온다고 했다. 대형마트 첫 의무휴일이었던 지난 8일에는 수산시장 내에서 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자녀들이 초등학교 시절 '생선을 내다 파는' 엄마의 직업을 몹시나 부끄러워해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한데 지금은 "제가 생선가게를 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더라고요."

그는 일부러 자신을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을 위해 1년 365일 중 설·추석 연휴를 제외하고 361일을 자식처럼 잘 보듬은 생선과 함께 한다.

장순하씨. 동문수산시장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이름 석자를 모를 뿐더러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 단지 어느 해, 어느 날 '30여년째 동문수산시장에서 장사하는, 손주를 둔 할머니'에게서 '당일바리' 생선을 사는 것 뿐이다.

시장 좌판에서 물건을 사는 이들은 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선 달인들에게서 비린내 가득 배인 정(情)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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