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대능원을 몇 배 키워 놓은 것 같은 오름은 수만 년 전 제주도와 함께 탄생했다. 오름은 인간 세상에서 조금 비켜선 채 여전히 태초의 기억과 존재의 비밀, 그리고 자연의 신비한 숨소리를 들려준다. 문신기와 문신희. 제주도 토박이로 형제인 저자들은 그들의 표현대로 1년 반 동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70여개의 오름을 오르내렸다. 그중에서 34개의 오름을 엄선해 100여장의 사진과 함께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제주오름 걷기여행'은 제주도를 동서남북으로 나눠 각 지역을 대표하는 오름 34개를 소개하고 있다. 오름의 여왕으로 불리는 다랑쉬오름, 콜로세움을 재현해 놓은 듯한 아부오름, 뒤태가 아름다운 손지오름, 추사의 산이라 불리는 바굼지오름, 물결치는 오름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높은오름, 1000여 년 전에 태어난 비양도, 세계자연유산의 트리플 크라운 거문오름, 사려니 숲길과 산정호수가 있는 물찻오름, 고성을 닮은 거미오름 등등.
오름이 보여주는 풍경의 마술은 볼수록 경이롭고 숭고하다. 오름 외면이 보여주는 물결치는 곡선미는 여인의 몸매를 닮았고, 분화구와 산정호수가 연출하는 내면 풍경은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그리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들판과 푸른 바다는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시 같다. 이 모든 절경을 어느 오름이든 10~30분만 오르면 경험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한 오름 34곳은 섬 전역에 퍼져있는 368개의 오름에 비하면 아주 적은 편이다. 그러나 제주를 대표하고, 접근성이 좋으면서, 풍경이 매혹적인 오름은 대부분 담았다. 아울러 오름 여행을 위한 안내서를 넘어 제주의 자연과 역사, 문화와 삶을 책 곳곳에 짧은 소설처럼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다. 따라서 오름뿐만 아니라 제주도 토박이가 들려주는 제주도 내면의 이야기를 덤으로 얻을 수 있다.
34개 원고의 마지막에는 각 오름의 상세 지도와 가는 방법을 자세하게 싣고 있어서 초보자라도 누구나 쉽게 찾아 갈 수 있다. 또한 부록으로 지은이가 제안하는 오름 트레킹 코스와 함께 제주 토박이가 소개하는 맛집과 카페도 수록했다. 가히 환상의 풍경 미학을 보여주는 오름 여행 안내서라 할 만하다. 디스커버리미디어.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