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다고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인가

나와 같다고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인가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 충청편
  • 입력 : 2013. 02.22(금)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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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는 5400여 곳의 폐사지가 산재해 있다. 이미 오래전 법등이 꺼진 이들 폐사지에는 몇몇의 석조 유물들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남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중에서도 전라남도의 절터는 분방하고 아름답다. 전라북도의 절터는 고요하고 성찰적이다. 그렇다면 충청도 절터가 간직하고 있는 특징은 무엇일까? 이 책 제목 '나와 같다고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인가'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충청도는 한반도 남북을 잇는 교통요지여서 강줄기를 따라 여러 불교 종파들이 모여들어 서로 대립하는 동시에 공존했다. 고려 때는 교종을 통치사상으로 내세운 중앙정부가 지방 선종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이 지역에 화엄사찰을 여럿 세우기도 했다. 그 만남과 통합의 과정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과 마주치면 대립하기도 하지만 겸손해지고, 새로운 생각과 기존의 생각을 통합해 완전한 모습에 이르려고 한다. 바로 깨달음의 경지이다. 저자는 충청도의 절터에 이와 같은 사상과 통찰이 깔려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이 책은 충청도 절터들 가운데 아홉 곳을 세심하게 선별해 다뤘다. 보령 성주사터부터 책의 여정을 시작해 서산 보원사터, 당진 안국사터, 제천의 사자빈신사터와 월광사터, 충주의 미륵대원사터, 숭선사터, 청룡사터, 김생사터까지 충청도 절터의 진경을 펼쳐 보인다. 때로는 시적인 감상으로, 때로는 설화와 전설과 민담으로, 때로는 불교와 관련된 역사적 사료로 절터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독자들은 이들 절터의 흔적을 찬찬히 더듬어봄으로써 불교의 역사·문화·사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한편 오늘날 한국의 이념 대립 현상에 대한 시사점을 찾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주요 축인 사진은 절터 현장을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멋이나 장식, 기교 등을 배제하고 담백하게 현장을 담았다. 글에서는 청각과 후각이 특히 두드러진다. 제천 월광사터에서는 "마른 낙엽 위로 또 다른 낙엽이 떨어져서 서로 부딪는 소리"에 주목하고, 그 "가을 햇살처럼 투명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당진 안국사터에서는 "잎들 마르면서 나는 향기가 새벽의 눅진한 공기에 묻혀서 하늘로 떠오르지 못하고 절터에 가득차 있었다"며 후각적 즐거움에 젖는다.

이처럼 저자는 책 곳곳에서 화려한 감각의 향연을 펼친다. 이러한 탐미적 경향은 타락이나 파괴로 흐르지 않고, 찬탄이나 경건함으로 이어진다. 그것이야말로 절터의 풍경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아름다움의 정체라는 것이다. 알마.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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