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보물창고 곶자왈에 '솨~' 시원한 바람이 분다

생태계 보물창고 곶자왈에 '솨~' 시원한 바람이 분다
[길 路 떠나다]제주시 ‘동백동산습지’ 탐방로
  • 입력 : 2013. 06.21(금) 00:00
  • 문미숙 기자 ms@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람사르 시범마을 1호로 지정된 선흘1리 동백동산에 있는 먼물깍 습지

중산간 선흘1리에 세계적 습지
세계 첫 람사르 시범마을 지정
곶자왈 생태 원형 품은 원시숲

"솨~솨~솨~" 높은 곳에서 흘러내린 바람이 다가와 쉼없이 속삭였다. 청량한 마찰음이다. 바람많은 섬 제주지만 하늘을 향해 뻗은 상록수림으로 뒤덮인 숲에서 만나는 제주의 바람은 더 유난스러웠다.

제주시 동부에 있는 조천읍 선흘1리는 동백동산마을로 더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습지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 0.59㎢의 동백동산습지는 세계가 인정한 생태계의 보물창고로, 조용하던 중산간 마을에 시원한 변화의 바람을 한바탕 몰고 온 주인공이기도 하다.

동백동산은 국내 최대규모의 상록활엽수림이 발달한 천연림이다. 멸종위기종 등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이자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제주 곶자왈의 생태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생태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1년 제주도기념물로 지정됐지만 당시만 해도 토지소유주들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으면서 못마땅해하는 이들이 적잖았다고 한다.

그런 동백동산습지가 2010년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고, 2011년에는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지난 5월에는 람사르사무국과 환경부가 공동으로 선흘1리를 람사르 시범마을 1호로 지정하면서 동백동산을 바라보는 마을사람들의 시선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지난 18일 마을에선 지역주민들이 중심이 돼 람사르 시범마을 현판식을 갖고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제주시 중산간마을인 선흘1리에 있는 동백동산습지는 국내 최대 규모의 상록활엽수가 자라는 천연림으로, 곶자왈의 생태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물창고다.

동백동산습지를 찾은 날은 햇살이 따가왔다. 함덕에서 남쪽으로 6㎞쯤 올라가면 닿는 선흘1리사무소 북쪽으로 옹기종기 들어선 집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돌담길을 따라 들어가면 함덕초등학교 선흘분교장이 나오고 곧 동백동산습지 탐방로 입구다.

몇 발자국 옮겨놓자마자 초록세상이 펼쳐진다. 저만치 앞서가는 탐방객을 좇아 걸음을 재촉하는데 이미 3㎞쯤 떨어진 탐방로 반환점을 찍고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부지런한 탐방객들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다.

10여분 남짓 걸었을까? 아담한 탐방안내소가 보이고, 동백동산의 대표적 습지인 먼물깍 습지다. 동백동산에는 곶자왈지대에서는 드물게 여러 개의 연못이 있어 환경부 멸종위기야생식물Ⅱ급인 순채 등 다양한 수생식물상을 품고 있다. 먼물깍 습지에는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Ⅱ급인 물부추를 비롯해 부엽식물인 붕어마름, 정수식물인 송이고랭이 등이 분포한다.

▲탐방로 암괴 사이사이에 뿌리내린 나무들이 제주곶자왈의 강인한 생명력을 잘 보여준다.

먼물깍 바로 옆에는 정자가 있다. 휴식을 겸한 습지 전망대 같다. 햇볕도 피할겸 잠시 앉았더니 시원한 바람이 온몸으로 파고든다.

먼물깍을 벗어나면 다시 울창한 상록활엽수림이다. 덕분에 제법 따가운 초여름 햇살을 잠시 잊게 한다. 나무사이로 간간이 스며드는 햇살을 만나고서야 바깥날씨가 떠오를 정도다. 선흘곶자왈을 대표하는 늘푸른 나무인 종가시나무와 참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사이로 난 탐방로 바닥에는 낙엽이 가득해 발 밑에서 바스락거린다. 머리위에서는 나무들이 바람결에 몸을 맡긴 채 "솨~솨~" 하고 소리를 낸다.

1960년대 말까지 사용된 것으로 전해지는 숯가마터도 동백동산습지에 남아있다. 연료가 귀했던 시절 종가시나무, 참나무 등으로 숯을 구워 난방용이나 팔아서 생계를 꾸리곤 했다.

탐방로에선 화산활동때 분출한 용암으로 만들어진 곶자왈의 다양한 식생을 한 눈에 엿볼 수 있다. 화산활동때 분출된 용암이 흐르면서 만들어낸 얼기설기 얽힌 암괴들은 식물성장에 필요한 보온과 보습 역할을 한다. 때문에 표토층이 없는 바위틈에서도 나무 씨앗들이 발아하고 토양으로 길게 뿌리내린다. 바위틈에서 자라 열대우림에서나 볼법한 기괴한 나무뿌리들이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또 동백동산습지 대부분의 지역에서 암괴군과 습지를 따라 우점하는 가는쇠고사리 등 양치식물이 다양하게 분포한다. 곶자왈의 함몰 및 융기지형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해 남방계와 북방계 식물이 공생할 수 있고, 양치식물 분포도 많다. 곶자왈은 암석과 암석 틈새로 빗물이 빠르게 유입되는 제주 지하수의 공급원이기도 하다.

왕복 6㎞쯤 되는 동백동산습지를 탐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정도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421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