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함께뛰자! 희망제주!]천년의 유산 제주城을 살리자(1)<br>제1부-성을 말하다 성곽을 거닐다-(1)프롤로그

[신년특집/함께뛰자! 희망제주!]천년의 유산 제주城을 살리자(1)<br>제1부-성을 말하다 성곽을 거닐다-(1)프롤로그
제주성은 과거의 역사 아닌 현재이자 미래의 유산
  • 입력 : 2014. 01.01(수) 00:00
  •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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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오현단 인근에 남아 있는 제주성 성곽.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정비했음에도 불구 원형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강희만기자 photo@ihalla.com

탐라국과 현대 잇는 제주의 역사
성 안에는 관아와 민가가 형성돼
일제강점기 이후 해체 가속화
제주시 원도심을 크게 왜곡시켜
제주 천년의 유산 생명력 되찾을 때


제주도는 성곽의 섬이다. 제주성 정의현성 대정현성 등 3성과 화북진 등 9진, 25봉수, 38연대가 섬 곳곳에 요새처럼 버티고 섰다. 내륙 깊숙한 곳에는 고려시대 축조한 항파두리성이, 해안가를 따라서는 환해장성이 둘러쳤다.

조선시대(세조 2년 1456년) 집현전 직제학이었던 양성지가 "우리 동방은 성곽의 나라"라고 했지만 제주도야말로 '성곽의 섬'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것도 해안에서부터 3중으로 독특한 방어시스템을 구축한 성곽의 섬이다.

성곽의 중심에는 제주성이 있었다. 제주성은 탐라국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역사와 함께 했다. 제주성은 단순한 성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관아가 있었고 민가도 함께 했다. 성을 중심으로 지명도 생겨났고, 신분도 갈렸다.

사람들은 성을 쌓다가 돌에 깔려죽거나 먹을 것이 없어 인분을 먹기도 했다. 그들에게 성의 의미는 무엇일까. 굶주림에 시달리고, 돌에 깔려 죽더라도 성곽을 쌓는 일은 절박한 과제였다. 그것은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봉건왕조 지배층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제주성은 기원 무렵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탐라국 권력의 중심이었다. 처음은 무근성에서 출발했다. 제주성은 무근성을 토대로 보수와 확장을 거듭했다. 탐라 건국신화의 주역인 삼을나도 제주성을 중심으로 터를 잡았다. 1105년(고려 숙종 10년), 그때까지만 해도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던 '탐라'가 '탐라군'으로 개편돼 고려의 통치체제 아래 놓이고, 조선시대 삼읍체제가 확립된 이후에도 그랬다.

그렇지만 1000여 년을 굳건히 지탱하던 제주성은 일제강점기 이후 강제로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일제가 산지항을 건설하면서 성곽을 허물어 바다를 매립하는데 써버렸기 때문이다. 제주성 동문과 서문 남문을 비롯 많은 건물들도 사라졌다. 이때부터 강제된 식민지 경관은 오늘날 제주시 원도심을 크게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에도 우리는 제주성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도시화 바람 속에 성곽이 차츰 훼손되고 멸실되면서 애물단지 신세가 된 것이다. 오늘날 제주성은 거의 형체를 잃어버렸다. 생명력이 사라진 지 오래다.

제주시 원도심을 거닐다보면 제주성의 잔해와 마주하게 된다. 도시화와 개발 바람 속에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성곽 잔해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탐라국 이래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번성을 누리던 제주성 안의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옛 영화는 사라지고 늘어나는 빈집과 활기 잃은 풍경만이 제주성을 채우고 있다. 천년의 유산 제주성은 과거의 역사에만 머무른 화석화된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성곽의 역사성과 미래유산적 가치는 전국 지자체가 주목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와 경기도는 2015년까지 한양도성과 남한산성을 세계유산에 등재시킨다는 목표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충청북도의 경우도 '중부내륙 산성군'을 세계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나주시를 비롯한 다른 지자체들도 성곽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속적인 정비에 나서고 있다.

탐라국시대부터 1000여 년을 지탱해온 제주성은 애물단지가 아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배우고 미래 교훈으로 삼아나갈 수 있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제주성은 과거의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우리 곁에 살아 숨쉬는 현재이고 미래의 유산이다. 숨가쁘게 달려온 개발 과정 속에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망각의 기억을 되살려 천년의 유산 제주성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옛 자취를 느끼게 해주는 제주성 남문 동치성 성벽. 강희만기자



"제주성 보존·정비 시급" 본보 집중 제기

제주시, 복원 논의 구체화…올해는 범시민 운동 '원년'


훼손·멸실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면서 보존·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던 제주성(제주도기념물 제3호)의 복원논의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제주시가 제주성 보존 활용계획을 수립 올해부터 본격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탐라 이래 근현대까지 제주의 중심이었던 제주성은 일제 강점기 이후 개발과정에서 대부분 훼철됐지만 제주도 등 당국의 무관심 속에 수십 년 동안 방치돼 왔다. 이제껏 제주성과 관련한 실태파악은 물론 학술조사와 보고서조차 없을 정도로 애물단지 신세였다.

제주성 정비복원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에 이르러서였다. 본보가 제주성 훼손실태의 심각성과 보존·정비대책 수립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복원문제가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일제가 성곽을 허물고 도로로 변한 곳에서 성곽 기단부가 발견되는 등 훼철 현장도 처음으로 확인됐다. 제주성의 주요 정자였던 공신정 터에 제주기상청 신축 이전계획도 본보 보도로 알려졌다. 이후 공신정 터에 대한 발굴에 들어갔으며 기상청 이전을 둘러싸고 지역사회에 첨예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주도의 행태도 도마에 올랐다. 역점 시책인 탐라문화광장을 조성하면서 제주성의 옛 성곽이자 중인문에 대한 조사없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물의를 빚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행정의 무관심속에 사라진 공신정 주춧돌의 소재도 확인되면서 공신정 복원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신정 주춧돌은 현제 제주목 관아로 옮겨진 상태다.

제주시는 이를 계기로 제주성 정비·복원은 물론 성돌모으기 운동을 추진할 계획이다.

제주시 문화예술과 김윤자 과장은 "올해부터 제주성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정비 및 복원사업에 나서겠다"며 "성돌모으기 운동도 전개 시민과의 공감대 형성을 통한 참여를 이끌어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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