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그곳을 탐하다](6)제주시 원도심 탐방

[골목, 그곳을 탐하다](6)제주시 원도심 탐방
켜켜이 쌓인 시간의 길에서 가능성을 보다
  • 입력 : 2014. 03.27(목)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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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제주도의회 제주문화관광포럼과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본태박물관은 관덕정에서 시작해 구 제주시청사 터, 원도심 골목길, 성내교회, 조일구락부, 제주화교 소학교 등을 거쳐 향사당에 다다르는 코스를 따라 걸었다. 김태일 교수가 길잡이를 맡은 이번 답사에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함께했다.

최근 제주시 원도심 기억 찾는 발길 늘어
저마다 추억 떠올리며 침체된 골목 재발견
관광자원화 위한 콘텐츠 개발 목소리 높아

언제부턴가 제주시 원도심의 기억을 찾아 골목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보고 지금은 사라져 버린 것을 추억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발걸음은 현재에서 과거를 되짚고 그 속에서 미래를 그리려는 움직임이다. 골목 어귀에 흩어져 있는 기억의 파편을 엮으면서 보다 나은 도시의 미래를 꿈꾼다.

이번 만큼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돼 '골목 탐하기'에 나섰다. 같은 공간에서 각각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과 발걸음을 맞췄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모이니 골목의 과거와 현재 모습이 퍼즐처럼 완성돼 갔다. 원도심을 위한 조언도 이어졌다.

#봄날, 탐라의 향기를 만나다

지난 22일 관덕정 마당이 모처럼 북적였다. '봄날 탐라의 향기를 만나다'를 주제로 구도심 문화유산 답사가 있던 날이다. 제주도의회 제주문화관광포럼과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본태박물관이 이날 행사를 주관했다. 초대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따스한 봄날, '개발'돼 가는 제주도가 '보존'돼야 하는 이유를 함께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참가자들은 제주 읍성의 흔적 등 옛 제주사람들의 삶의 공간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관덕정에서 시작해 구 제주시청사 터, 원도심 골목길, 성내교회, 조일구락부, 제주화교 소학교 등을 거쳐 향사당에 다다르는 코스를 따라 걸었다. 김태일 교수가 길잡이를 맡은 이번 답사에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함께했다.

#원도심의 기억을 모아서

함께 길을 걸었지만 그곳에서 건져올린 기억은 저마다 달랐다. 머리가 희끗해진 노신사는 어릴 적 기억 한 장면을 떠올렸다.

이날 참가자 중 한 명인 고순태(80)씨. 고씨는 답사 시작점인 관덕정 마당에서 60여년 전 기억을 꺼내놓았다.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고씨는 광장에 울렸던 총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1947년 3월 1일 3·1절 28돌 기념집회가 열렸던 날이다.

"누구를 따라서 거기에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아요. 기념 집회가 열린다고 해서 갔는데 그날 시위 군중을 향해 경찰이 총을 쏘았어요. '경찰이 우릴 죽이잰 햄쪄'라는 목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골목 골목으로 도망을 쳤지요." 고씨의 기억속 그날, 경찰은 기념집회에 참석한 시위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았고 그로 인해 6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제주의 최대 비극인 4·3사건의 도화선이 된 날이다.

고씨의 얘기처럼 원도심에는 아픈 역사가 흔적처럼 남아있다. 지금의 제주목(濟州牧) 관아가 주차장이 될 뻔했다는 강문규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의 얘기도 그 중 하나다.

제주목 관아는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다. 탐라국 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허물어져 관덕정을 제외하고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1991년부터 진행된 4차례에 발굴과정에서 확인된 초석·기단석 등을 토대로 2002년 12월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90년에 제주시가 제주목 관아 자리에 차량 350대를 세울 수 있는 지하 2층 규모의 주차장을 만들려고 계획했었다. 시 의회의 승인까지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탐라의 핵심적인 사적지가 그렇게 사라지면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정성을 모아 제주목 관아에 기와장을 올렸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강 소장의 이야기다.



#원도심의 미래를 말하다

이날 참가자들이 골목 안에서 만난 것은 지금은 침체돼 버린 원도심의 가능성이었다.

일본인 여행객 가이드 김모(50)씨는 "제주에 내려온지 20여년 쯤 되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제주 원도심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며 "요즘엔 개별 단위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를 잘 살려 콘텐츠를 만든다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도심 걷기는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골목의 가능성을 얘기하는 자리였다.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만큼 제주의 대표적인 문화·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원도심 곳곳에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장소를 보존한다면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원도심은 추억과 기억의 공간이 많은 곳이다. 도시의 가치는 이러한 공간들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그게 바로 역사·문화의 도시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원도심의 숨은 가능성을 찾는 걸음이 늘고 있지만 현재의 원도심은 생기를 잃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상권은 덩달아 침체됐다. 원도심에 활기를 되찾기 위해선 오래된 장소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답사를 함께한 유홍준 전 청장은 "역사가 오래된 건물이나 공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도심을 깨우기 위해선 사람들이 찾고 싶은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유 전 청장은 "일본 도쿄에는 '키요미즈자카'라는 곳이 있다. 오래된 골목길인 이곳에는 항상 사람들이 넘친다. 포목집, 도자기 가게, 떡집 등 대를 이어 내려오는 가게가 몰려있어 사람들이 찾는 것이다. 지역의 삶의 문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관덕정, 무근성 등 제주의 원도심에서도 인간적 체취가 느껴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가 있는 공간이어도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 수 없으면 발전도 없다. 골목 중간 중간에 찻집이나 오메기떡을 파는 곳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원도심을 관광 자산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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