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명 그림책 '흑룡만리'
옛 이야기 방식으로 밭담의 가치 담아
화산섬 거친 땅 곳곳을 가로지르고 서있는 검은빛 밭담. 봄여름가을겨울 그 땅에서 자라고 뽑히고 다시 자라는 곡식처럼 오랜 생명력을 이어온 존재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늘상 눈에 걸리는 밭담이어서 그랬을까. 세월의 파고에 밀려 밭담이 하나둘 허물어지고 사라지는 걸 미처 몰랐다. 지난 4월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제주밭담을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하면서 그걸 관리하고 보전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게 됐다.
박소명 작가가 이같은 제주밭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창작 그림책을 냈다. 제주설화 속 인물 등을 끌어와 옛 이야기 방식으로 꾸민 '흑룡만리'다.
제주섬에 흩어진 밭담 등 돌담을 전부 이으면 만리장성보다 길고 구불구불 연결된 시커먼 돌이 용처럼 꿈틀거린다고 해서 흑룡만리라고 불렀다. 제주 사람들의 땀이 배어있는 밭담이 빚어내는 남다른 경관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림책 '흑룡만리'는 설문대할망, 화룡, 소년 백범, 판관 김구 등 상상 속 인물과 실존 인물을 등장시켜 밭담이 생겨나는 과정을 그려냈다. 이 땅의 돌멩이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의 손길로 밭담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이야기다.
닥치는 대로 불을 뿜어내며 평화를 깨는 하늘나라의 화룡. 진노한 설문대할망은 화룡을 산산조각내 돌로 만들어버린다. 그 돌들이 떨어진 제주섬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지만 농사짓는 땅을 서로 '내 것'이라 우기며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소년 백범은 그런 어른들을 보며 발에 걸리는 돌을 주워 밭 구석에 매일매일 쌓아 나간다. 그건 제주 땅을 뒹굴며 영원히 돌로 살아야 했던 화룡이 꿈 속에 나타나 소년에게 전한 메시지였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땅을 구분하는 밭담을 쌓자 자연스레 싸움이 그쳤고 화룡은 흑룡 형상의 밭담을 타고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지은이는 "곳곳에 무너지고 흩어져있는 제주밭담을 보며 마음 한 켠이 아렸다"며 "밭담은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원히 변치 않는 미덕임을 보여준다"고 했다. 민들레 그림. 우리아이들.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