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각에서 재구성한 과학사

우리 시각에서 재구성한 과학사
정인경의 '뉴턴의 무정한 세계'
  • 입력 : 2014. 12.19(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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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왜 어려운 게 됐나
식민지 역사에 배인 과학

과학과 과학주의 구별을

조선인이 처음 접한 서양의 과학기술은 증기선과 대포였다. 그것을 처음 봤을 때 받은 충격은 서양 문명과 과학 기술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했다. 서양의 근대과학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과학기술은 자신의 열등함을 확인시켜주는 무서운 기계 그 자체였다.

과학이 생산된 역사적 맥락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에게 그것은 서양 천재들의 먼 나라 이야기처럼 생소했다. 더욱이 과학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한국은 식민 지배를 받았다. 우리의 역사·문화·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과학은 폭력적으로 이식되고 무조건적으로 주입됐다. 이 과정에서 과학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까지 생겨났다. 과학은 그저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픈 상처까지 줬다.

'우리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과학사'란 부제가 달린 정인경 박사의 '뉴턴의 무정한 세계'는 이같은 배경에서 쓰여진 책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서양 과학사를 다시 살피고 궁극적으로 왜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나섰다.

일제가 기획한 조선의 근대사회는 식민지적 근대화였다. 우리가 근대성의 가치를 체화하면 할수록 식민지 체제에 포섭되는 모순된 상황이었다. 식민지인에게 주어진 과학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치가 아니라 단지 식민 지배를 위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표본실의 청개구리'처럼 근대 기획과 계몽의 대상이 되어버린 식민지인은 출구를 찾지 못했다.

1930~40년대 일본 과학계는 눈부신 성장을 하며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유카와 히데키와 같은 세계적 수준의 과학자를 수백 명이나 키워냈다. 식민지 조선에서 대학설립과 고등과학기술교육을 철저히 억압하고 식민지 공업화로 조선인들을 착취하며 이루어낸 성과였다.

지은이는 우리가 식민 지배와 봉건적 구습에 수치심을 느끼며 과학주의적 감성에 길들여졌다고 말한다. 과학이 무엇인지 따져 묻지도 않고 과학을 무조건 믿은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뉴턴이 태양계의 운동을 밝힌 것이 과학이라면 계몽사상은 과학주의였다. 과학과 과학주의를 구별하지 못했다.

서양 제국주의자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과학은 진보와 문명, 계몽의 이념으로 포장된 과학주의였다. 그들은 계몽사상을 통해 과학을 보편적 가치라고 공언했다. 외부에서 주어진 보편적 가치가 폭력성을 띨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식민지 역사에서 똑똑히 경험했던 우리다.

"과학의 보편적 가치란 우리 스스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에 관심을 갖고 제대로 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돌베개.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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