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를 8~9년쯤 한 것 같다. 그 기간 동안 웬만한 음식은 한 번씩 다 만들어 봤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대충 때우는 일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한라일보에 입사하면서 밥을 해 먹는 일이 더 줄었다. 특히 주말에는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때우고 술자리에서 안주로 배를 채우는 일이 많아졌다. 뱃 속에 들어가면 배부른 건 마찬가지지만 마음은 공허했다. 점점 허약해지는 느낌이다.
지난달 서귀포지사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기자도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님과 같이 살게 됐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생선구이, 된장국, 몇 가지 밑반찬. 특별할 것 없는 밥상이었지만 밥을 3그릇이나 비웠다. 다 먹고 나니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달 정도 집밥을 먹으니, 그 시간이 '때우기'가 아닌 '채우기'로 변했다.
최근 서귀포시 남원읍 한 감귤가공공장 앞은 감귤을 가득 실은 트럭들로 장사진이다. 예년보다 비상품 감귤 비율이 4.4% 높아지고 예산삭감으로 가공감귤수매가 중단될 수 있다는 소문에 농가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줄을 서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는 가공용감귤이 쏟아지자 비상대책을 마련하고 24시간 공장 가동, 감귤 5000톤 긴급 수매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일일 가공처리 한계로 인한 부패과 증가, 감귤박 등 부산물의 처리난 등 또다른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어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주도는 감귤 경쟁력 향상을 위해 막대한 예산으로 각종 정책을 추진해 왔으나, 정작 과일시장에서 감귤의 시장 장악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옛날처럼 무조건 다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새로운 시장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 감귤산업을 허약하게 만드는 '때우기' 정책 보다는 장기적인 경쟁력을 키워줄 '채우기'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송은범 제2사회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