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안녕하십니까](4)정착주민 지원 조직 잇따라

[제주살이, 안녕하십니까](4)정착주민 지원 조직 잇따라
행복한 이주 꿈꾼다면 둥지튼 마을서 길을 찾자
읍면동마다 멘토 역할 맡을 정착주민협의회 구성
  • 입력 : 2015. 04.02(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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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새로운 제주생활에 대한 기대를 안고 팸투어에 참가한 제주 이주 희망자들이 선배 귀농인을 방문해 기념촬영했다. 사진=제주도 제공

'그들끼리 네트워크' 넘어 지역과 소통기회 넓혀야

서귀포시 안덕면 상창리에 둥지를 튼 박원석씨는 '동네 삼춘들' 덕분에 무탈하게 제주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텃밭에 상추 한번 키워본 적 없던 그가 지금은 '행복한 제주 농부'가 됐으니 말이다. 노지 감귤, 한라봉, 밭농사 등 손마디가 굵어지도록 땅을 일구고 있는 그다. 제주 정착 이후 마을 사람들과 교감이 부족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이즘엔 또다른 작물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나홀로 발품 팔며 정보 파악=제주도가 지난해 7월 내놓은 '제주특별자치도 정착이주민 실태조사 및 정착지원 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나홀로 발품을 팔며 제주 이주 정보를 파악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귀농귀촌인 등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다.

'제주이주 관련 정보를 어떤 경로로 습득했나'란 물음에 34.8%가 '직접 조사'했다고 밝혔다. '제주에 먼저 이주한 지인'을 통해 정보를 얻은 경우가 25.9%, '제주출신 지인'이라도 답한 사람이 14.3%로 그 뒤를 이었다.

제주생활 4년째인 박원석씨는 정착 초기에 동생 부부가 운영하던 펜션을 맡아 꾸려가면서 집 걱정은 덜었지만 농사일은 캄캄했다. 25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농사에 뛰어들 생각으로 제주로 향했던 그이기 때문이다.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진행하는 귀농 교육에 참여하며 초보 농사꾼으로 발을 디딘 그는 마을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한단계 성장했다고 믿는다.

"70대 할아버지가 나의 멘토가 되어주었다. 처음 감귤농사를 짓는 내게 때맞춰 과수원에 어떤 약을 쳐야 하는지 알려주곤 했다. 그걸 메모했다가 다음 농사에 써먹었다."

그에게 길을 알려준 이들은 바로 이웃들이었다. 어느덧 선배 귀농인 자격으로 예비 귀농인 교육에 초청돼 강의를 하는 박씨는 그때마다 "마을안에 모든 정보가 있다"고 강조한다.

▶"담이 낮으면 제주생활 더 행복"=이형재씨의 명함엔 '농부'라는 이름이 또렷했다. '행복하고 건강한 감귤'을 키우는 '한라뜰'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기업 임원에서 물러난 뒤 제주에 왔다. 2012년 첫 해엔 모슬포에서 지냈다. 그곳에 머물면서 착실히 귀농귀촌 교육을 받고 정착할 지역을 물색한 뒤 서귀포시 강정동에서 감귤농사에 뛰어들었다.

이씨의 제주생활은 제주문화를 이해하는 일부터 시작됐다. 반년 가깝게 인사를 받아주지 않던 이웃이 마침내 마음을 터놓던 일, 7개월간 길가의 잡초를 베던 이씨 부부를 조용히 지켜본뒤 수고했다며 점심값을 건네던 동네 주민들의 사연은 제주땅을 더욱 애정있게 만든 계기였다. 그래서 그는 제주자연이 좋아 이곳에 정착했으면서도 담을 쌓고 사는 이들이 안타깝다고 했다. 마음의 벽까지 불러올 수 있어서다.

"담을 허물면 제주 자연이 모두 우리 눈안에 들어오지 않나. 그런데 왜 제주에 와서 살면서 담을 쌓아버리는지 모르겠다. 담이 낮아질수록 제주생활은 행복해진다."

지난해 7월 제주 이주 예술가 등과 뜻을 모아 한라뜰 농원에서 '제1회 드릇파티 문화제'를 열었던 그는 올해도 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높다란 담장을 치우고 귀농귀촌인과 지역주민들이 만나는 자리다.

▶수눌음으로 제주를 배우다=농부로 살아가는 이형재씨와 박원석씨는 얼마전 지역에 조직된 정착주민지원협의회 대표를 각각 맡게 됐다. 정착주민들의 멘토 역할만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스스럼없이 소통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수눌음'의 미덕을 이야기했다. 수눌음은 밭농사 등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돌아가면서 이웃을 돕는 제주 특유의 노동 방식을 일컫는다.

이형재씨는 제주사람들을 통해 수눌음을 배웠듯, 도움이 필요한 귀농인들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간다고 했다. 이씨가 생각하는 수눌음은 육지의 품앗이와 달리 대가가 없다. 박원석씨는 수눌음을 통해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며 맞춤한 농사 정보를 익혔다.

지난 3월말까지 제주도내 모든 읍면동에 정착주민협의회가 구성됐다. 정착주민협의회가 수눌음 같은 역할을 하려면 그들끼리의 네트워크를 뛰어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주에 이주한 이들이 결국 온전한 제주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지원하는 일이 정착주민협의회를 만든 목적이라면 말이다.

"제주섬으로 어서 오시라"
정착주민 조례 제정 계기로 각종 지원 조직 잇따라 구성
읍면동 평가 항목에 포함되자 전 지역 정착주민협의회 결성


지난해 4월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 정착주민 등 지원에 관한 조례'엔 '정착주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외국 혹은 타 시·도에서 장기간 살다가 제주특별자치도로 이주해 제주자치도에 주소를 두고 실제 거주하면서 지역주민으로 생활하는 자로 제주의 문화와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이대로라면 정착주민은 제주생활이 그리 오래지 않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겠다.

정착주민 조례는 제주에 이주한 사람들의 안정적 적응을 돕기 위한 근거가 된다. "제주섬으로 어서 오시라." 낯선 땅으로 찾아드는 사람들을 두 팔 벌려 안으며 그렇게 말하듯 제주도는 정착주민 조례를 만들었다.

지난달 서귀포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감귤 정지전정 현장 교육. 사진=제주도농업기술원 제공

이에 따르면 제주도지사는 정착주민들이 제주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토대 마련에 필요한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고 이에 필요한 각종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정착주민 원스톱 서비스, 정착 주민에 대한 창업과 취업, 주거·문화·교통·의료·안전 등 정주환경 개선, 제주이주 희망자를 대상으로 사전 현장 답사 기회 제공 등 다양한 사업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조례를 바탕으로 여러 위원회가 생겨났다. 지난해 12월 제주정착주민지원위원회가 꾸려졌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읍면동 주민센터에는 일제히 정착주민지원센터 간판이 내걸렸다. 올해 2월엔 정착주민 정주환경 개선 실무위원회가 구성됐다. 제주시·서귀포시 두 행정시와 읍면동에는 정착주민지원협의회가 하나둘 들어섰다. 정착주민의 제주 생활을 돕겠다는 조직이 차고 넘치는 모양새다.

이중 정착주민지원협의회는 일종의 '풀뿌리 조직'에 해당된다. 선배 정착주민들이 후배 정착주민들에게 멘토가 되고 친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읍면동마다 설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제주도가 예상했던 만큼 쉽사리 묶이지 않았다. 읍면동 평가 항목 중 하나로 정착주민협의회 활동을 추가하자 뒤늦게 모임이 잇따랐다. 제주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착주민지원협의회 결성이 더뎠던 서귀포시 지역 읍면동에서도 3월 들어 바삐 정착주민 간담회를 가졌다.

외형적으론 3월말 현재 제주도 43개 읍면동 전체에 정착주민협의회가 조직됐다. 이들 협의회가 얼마나 지속성을 갖고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마을에 새롭게 이주한 사람들의 애로사항을 듣겠다며 면장이 자연스럽게 모임을 청한 자리엔 30명쯤 모였지만 정착주민협의회를 만들겠다며 참석을 제의한 자리엔 그 절반 정도만 얼굴을 내밀었다는 어느 지역의 사례는 곱씹어볼 대목이다.

이와관련 제주도 지역균형발전과 강승철 주무관은 "정착주민협의회는 자율적 운영을 원칙으로 읍면동에서 행정적 지원을 벌일 예정"이라며 "정착주민들이 제주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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