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안녕하십니까](5)마을기업을 꾸리는 사람들

[제주살이, 안녕하십니까](5)마을기업을 꾸리는 사람들
'무릉외갓집'에서 키운 안심 먹거리와 함께 '제주살래'
  • 입력 : 2015. 04.16(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무릉외갓집'은 지역에서 사계절 생산되는 농산물을 도시 소비자의 식탁까지 배달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무릉외갓집 제공

지역·이주민 만난 마을기업· 협동조합 우수 사례
귀농귀촌인 역량 활용 지역산업 연계해 소득 창출

그가 몰고 온 소형트럭에선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음악에 맞춰 햇살좋은 봄날씨를 즐기는 듯 했다. 2011년 제주로 이주했으니 올해로 5년째. 그의 제주 생활은 터잡은 마을의 주민과 호흡하며 그들과 함께 꿈을 그려온 시간이기도 했다. '제주살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안광희씨다.

▶제주 자연·인문 배우는 일부터 시작=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에 있는 '제주살래'. 서귀포귀농귀촌협동조합이면서 마을기업의 이름이 바로 '제주살래'다.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모여 아름다운 가치를 공유할 앞날을 그리며 2013년 7월 서귀포귀농귀촌협동조합이 꾸려졌다. 같은해 10월엔 마을기업 '제주살래' 브랜드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협동조합이었던 것은 아니다. 독서동아리인 '남원북클럽'이 모태가 됐다. 제주를 배우고 싶은 이주민을 중심으로 생태, 환경, 인물, 역사 등과 관련된 책을 읽고 현장을 답사하며 새롭게 발딛고 살아가는 땅의 속살과 만나는 모임이었다. 느슨한 연대지만 공동체적 삶에 대한 고민이 늘면서 협동조합을 출범시켰고 그것이 마을기업으로 이어졌다.

'제주살래'엔 귀농귀촌인만이 아니라 마을회 임원, 지역 주민 등이 참여하고 있다. 조합원수는 예비조합원까지 합쳐 50명이 넘는다. 제주감귤 구매량의 10%를 적립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사랑의 감귤 공급 사업', 고사리·옥돔·흑돼지 등 경쟁력있는 남원읍 농수축산물을 직거래로 도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우리마을 꾸러미 사업' 등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

'제주살래'의 '행복한 원예수업'은 제주 자연을 배우는 과정이다. 사진=제주살래 제공

하지만 그 수익이 전부 조합원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지역의 문화예술교육에 투자된다. 남원1리 어촌계와 연계한 다큐멘터리 '그림 그리는 해녀' 제작, 남원읍 17개 마을을 순회하는 '청춘극장'이 대표적이다. 올해는 '제주 할망들의 수다' 등 팟캐스트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경제·문화·교육·생활공동체 등 4개 공동체로 구성된 '제주살래'는 작년 제주도 협동조합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홍보·판매로 도시 소비자 식탁까지=서쪽 마을인 대정읍 무릉리에는 '무릉외갓집'이 있다. 2009년 무릉2리 마을회에서 운영하다 2011년 영농조합법인으로 전환했다. 제주 자연과 농부의 손을 통해 탄생한 좋은 식재료를 전국 각지 소비자들에게 배송하는 사업을 벌이는 곳이다.

"바다와 일정한 거리에 있는 중산간에 위치한 무릉리는 좋은 토질과 지하 150m에서 끌어온 암반수, 그리고 제주만의 풍부한 풍광이 만나 감귤, 포도, 마늘 등 50여가지 농산물이 사계절 내내 경작되고 있습니다."

화산섬 흙밭 사진을 배경으로 제작된 온라인 홍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릉외갓집'은 지난해 안전행정부 주관 우수마을기업에 선정됐다. 제주올레의 1사 1올레 사업을 통해 서울에 있는 벤타코리아 기업과 협약했고 이를 바탕으로 500여명의 유료 회원을 확보했다.

무릉2리 농민 등 조합원 27명이 땅에서 키워낸 식재료가 바다 건너 도시 소비자들의 식탁까지 가는 길에 홍창욱 실장이 있다. 농사짓느라 바쁜 농민들을 대신해 농산물과 가공식품 등을 홍보·판매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무릉외갓집' 상근자 2명 모두 이주민인데 홍창욱 실장도 그중 한 명이다. 한동안 제주시에 있는 IT업체에 근무했던 홍 실장은 '무릉외갓집'과 인연을 맺은 뒤 서귀포로 이사했다.

'제주살래'가 진행하는 조합원 교육인 텃밭 가꾸기. 새로운 마을살이의 희망을 키워가는 사업이다. 사진=제주살래 제공

▶"그대가 먼저 좋은 이웃 되어라"=제주 이주 열풍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밀려들면서 마을 안에 둥지를 트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제주도민, 서귀포시민을 넘어 마을 주민으로 살아가야 한다. '제주살래'와 '무릉외갓집'은 이주민이 지역주민과 행복하게 만난 사례로 꼽힌다. 귀농귀촌인의 안정적 정착을 도우면서 그들의 역량을 지역산업과 연결해 소득까지 얻고 있다.

서울과 미국 뉴욕 등 대도시 생활을 겪었던 안광희 '제주살래' 이사장은 조언을 구해오는 후배 정착민들에게 "좋은 이웃을 만나려 하지 말고 당신이 먼저 좋은 이웃이 되어라"고 말한다. 그가 조합원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제주살래'는 제주어 수업, 텃밭 가꾸기 등 마을 공동체 일원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합원 교육을 정기적으로 이어왔다.

홍창욱 '무릉외갓집' 실장은 "도시 커뮤티니와 마을 커뮤니티가 다른 만큼 도시생활에 익숙한 이주민들이 농촌마을에 정착할 경우 어려움이 더 클 것"이라며 "1년만 살아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장기간의 목표를 세우고 제주생활을 준비하는 일이 필요해보인다"고 덧붙였다.

"정착주민 참여 마을기업 등 육성"
제주도 '정주환경 개선 계획' 과제로 제시


구성원들의 협력과 연대,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일자리 창출, 지역 공동체 발전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경제.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 운영은 이같은 사회적 경제 활동에 해당된다.

2014년 12월 기준으로 전국에 1288개에 이르는 마을기업이 생겨났다. 그중 26개가 제주에서 운영중이다. 농산물과 가공식품 판매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테우 낚시, 해산물 잡기, 해양레저 스포츠 체험 등을 벌이는 기업도 있다.

협동조합은 그보다 많다. 같은 해 전국 각지에 6170개의 일반 협동조합이 구성됐고 제주엔 80개가 있다. 농수축산물 관련 사업을 비롯 피부 미용, 주택 마련, 문화예술 사업, 농촌 유학 체험 등 다양하다.

제주도는 지난 3월 '정착주민 정주 환경 개선 시행계획'을 통해 8개 분야 44개 과제를 내놓았다. 여기에 일자리 창출 방안의 하나로 정착주민이 참여하는 협동조합과 마을기업을 육성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귀농귀촌인들이 마을 기업 등을 통해 안정적인 농촌 생활을 이어가고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컨설팅 등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무릉외갓집' 판매장 내부.

이와관련 안광희 '제주살래' 이사장은 제주공동체의 에너지 등 사회적 경제를 '실험'할 수 있는 지역적 여건에 기대를 걸면서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도록 좀 더 많은 고민 속에 마을기업을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작년에 갔던 마을기업 박람회 참가 업체 대다수가 농산물 유통과 가공업이더라"며 "천편일률적인 마을기업이어선 안된다"는 의견을 냈다. 홍창욱 실장은 "'무릉외갓집'은 하나의 사례일 뿐 정답은 아니"라고 말했다.

제주도 지역균형발전과 고춘화 정착주민지원담당은 "단시일에 새로운 사업 발굴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만큼 우선 기회있을 때마다 읍면동에 우수 사례를 알리는 등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 운영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6553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