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수교 50년 제주와 일본을 말하다]제3부. 야쿠시마를가다](1)세계자연유산야쿠시마와 제주

[광복 70년·수교 50년 제주와 일본을 말하다]제3부. 야쿠시마를가다](1)세계자연유산야쿠시마와 제주
수백년 벌목 상처딛고 보전 가치 말하는 숲 세상
  • 입력 : 2015. 04.22(수)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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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세계자연유산 야쿠시마의 해발 1230m의 고지에 위치한 기겐스기는 3000년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킨 것으로 추정된다. 그 앞에 서 보면 인간의 삶은 순식간에 흩어질 것처럼 덧없이 느껴진다. 야쿠시마=강경민기자

섬 곳곳에 1000m이상 산이 우뚝 솟은 해상의 알프스
인간·자연의 공존속에 수천년 동안 살아낸 삼나무 숲
수백년간 벌목으로 상처 입기도… 체계적 보전·관리
일본 최초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람사르습지도 보유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섬은 한마디로 '숲의 나라'였다. 해안가를 따라 자리한 마을을 제외하곤 온전히 짙은 초록빛으로 넘실댔다. 가까이 들여다본 섬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말하는 듯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야쿠시마. 제주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공존을 말하는 초록 세상의 섬=야쿠시마는 일본 가고시마현에서 남쪽으로 60km 떨어져 있는 섬이다. 면적은 제주도의 4분의 1(500㎢) 수준이다. 인구는 1만명을 갓 넘지만 이곳에는 매년 20만~30만명이 발걸음하고 있다.

야쿠시마는 일본 열도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해안지역에는 오키나와처럼 아열대 기후가, 산간지역에는 삿포로처럼 아한대 기후가 나타난다. 산간에 눈이 쌓이는 겨울에도 해안가에는 하비스쿠스라는 열대성 식물이 꽃을 피운다. 섬 곳곳에 우뚝 솟은 산이 만들어낸 독특한 기후와 식생이다.

섬 중심부에는 한라산(1950m) 높이와 맞먹는 미야노우라다케(1936m)가 솟아 있다. 규슈 지방의 최고봉이다. 그 주변으로는 나가타다케, 오키나다케 등 1800m 이상의 산봉우리가 버티고 섰다. 1000m 이상 높이의 산만 해도 40여개가 넘는다. '해상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한달에 36일은 비가 내린다.' 일본의 대표 여류작가인 하야시 후미코는 자신의 장편 소설 '부운(浮雲)'에서 야쿠시마의 기후를 이렇게 표현했다. 실제 야쿠시마의 연간 강수량은 평지에서 4000mm, 산지에서 8000mm다. 쿠로시오해류의 영향으로 따뜻하고 습한 바닷바람이 산을 타고 와 많은 비를 뿌린다. 취재팀이 머문 2박 3일 동안에도 야쿠시마는 거의 매일 비를 뿌렸다. 풍부한 강수량은 야쿠시마 자연의 원천이다.

야쿠시마는 전체 면적의 90%가 숲으로 이뤄져 있다. 이곳의 상징인 삼나무 군락지는 천년 단위로 제 모습을 바꿔왔다. 그 안에서 수 천년 이상을 살아낸 삼나무는 웅장함을 넘어 경외감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일까. 이곳 사람들은 1000년 이상을 살아낸 삼나무를 '야쿠스기(야쿠시마의 삼나무)'라고 부르며 신성히 여긴다. 나무마다 저마다의 별칭을 붙여주기도 한다. 조몬스기(繩文衫)와 기겐스기(紀元杉) 등이 대표적이다. 수령이 최대 7200년으로 추정되는 조몬스기는 여태까지 발견된 삼나무 중 가장 오래됐다. 해발 1230m의 고지에 위치한 기겐스기는 3000년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킨 것으로 추정된다. 그 앞에 서면 인간의 삶은 순식간에 흩어질 것처럼 덧없이 느껴진다.

야쿠시마 전경.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섬은 '숲의 나라'를 떠올리게 한다. 강경민기자

▶야쿠시마가 전하는 메시지= 야쿠시마의 숲은 왠지 모르게 친숙했다. 제주의 곶자왈이 떠올라서다. 열대와 한대 식물이 공존하는 숲의 신비스런 분위기가 묘하게 닮았다. 해발 600~1200m에 자리한 시라타니운수 계곡에서는 제주에서 서식하는 식물을 마주하기도 했다. 트레일 코스 중간중간에서 검은재나무, 구실잣밤나무, 죽절초, 동백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닮은 점은 또 있다. 야쿠시마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일본에선 처음이었다. 제주지역도 한국 최초로 2007년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야쿠시마와 제주는 생물권보전지역이기도 하다. 다만 야쿠시마가 제주(2002년)보다 20여년 빠르게 지정됐다.

또한 두 곳 모두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습지를 보유하고 있다. 야쿠시마에선 2005년 바다거북의 산란지인 섬 북부 연안의 모래톱이, 제주에선 2006년 물영아리오름이 처음으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제주보다 일찌감치 자연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왔다는 점은 야쿠시마를 주목할 만한 이유이다.

아픈 역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17세기 에도 시대부터 야쿠시마에서 이어져온 벌목은 일본의 고도 성장 단계인 1960~1965년에 절정에 달했다. 수 천년을 살아온 삼나무도 목재용으로 힘 없이 베어져 나갔다.

자연을 보전하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야쿠시마환경문화재단이 2000년 발간한 자료집에 따르면 그 당시 야쿠스기를 보전하기 위해 벌목을 제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자연보호 캠페인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1993년 제정한 '야쿠시마 헌장'에는 야쿠시마의 자연 가치를 보전해 나가자는 의지가 담겼다.

벌목이 중단된 야쿠시마는 체계적으로 보전·관리되고 있다. 숲에선 가능한 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전하기 위해 나무 계단 외에 탐방 시설을 최소화한 모습이 엿보인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간도로는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아지길 반복하지만 섬 안에선 모두가 그 불편함을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원숭이와 사슴도 길가를 자유롭게 누빌 정도로 인간에 대한 경계심을 내려놓는다.

최근 대규모 개발로 인한 자연 훼손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제주에, 야쿠시마가 전할 메시지는 분명해 보였다.

특별취재팀=강시영·강경민·김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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